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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h 꿈중독 걸린 이야기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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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h 꿈중독 걸린 이야기 (3)

탱녀 2022. 1. 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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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09:00 ID:YL08tlViuzg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진에게 모든 것을 알릴까... 하고.
꿈 중독을 벗어난다는 선택지따위는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일 때에도, 언제나 그 문제를 생각했다.
소설을 쓴다고 둘러대며 현재 상황이라면 너는 어떻게 할거야?라는 식으로 지인들에게도 물어봤던 것 같다.

32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10:25 ID:YL08tlViuzg
그 중 한 지인의 대답이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자기 같으면 간원의 힘을 써서 오히려 역으로 협박을 하겠다고.
그 때까지 나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꿈 속에서 물의 간원자였고, 섬 주변은 온통 물이었다. 즉 섬에서의 나는 매우 강력한 물리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걸 스스로 깨닫지 못할 정도로 나는 몹시 지쳐 있었던 것 같다.

32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12:39 ID:YL08tlViuzg
꿈 속으로 들어간 나는 정호연 주변으로 경비처럼 선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묶어 놓는 것만으로는 정호연이 탈출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교대로 경비를 서는 것 같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해서 복수를 하고 싶은 걸까. 하고.

32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15:16 ID:YL08tlViuzg
나는 부아가 치밀어 간원의 힘을 최대한 많이 끌어올렸다.
화가 난 만큼 힘이 많이 사용됐는지, 섬 주변에 파도를 이끌어 올 수 있었다. 나는 바닷물로 머리를 꼿꼿이 세운 거대한 뱀의 형상을 만든 뒤
그들에게 말했다. 당장 어제 나에게 협박했던 남자를 데려오라고.

327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18:43 ID:YL08tlViuzg
그들은 의외로 순순히 그 남자를 데려왔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씨였던 것 같다.
하씨는 거들먹거리며 나를 보더니 난데없이 칼로 나를 위협했다.

32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20:28 ID:YL08tlViuzg
들고 있던 칼은 도무지 섬에서 사람의 손으로는 만들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날카로운 돌칼이었다.
그는 바람으로 절삭하는 게 자신의 특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왜 그 사람이 비교적 젊어 보였는데도 리더격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바람은 물보다 훨씬 주변에 많았으니까.

32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21:56 ID:YL08tlViuzg
하씨는 나에게 허튼 수작 부리면 정호연을 죽이고 나를 고문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나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산 자였으니까.
그렇지만 정호연을 죽인다는 말에 움찔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강경하게, 나는 이곳에서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들어왔다고 말하며 파도를 가리켰다.
나와 정호연에게 더 이상 위협을 가한다면 해일로 섬을 쓸어버리겠다고.

33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23:07 ID:YL08tlViuzg
정호연이 죽는다고 해도 나는 죽지 않는다.
나를 죽인다 한들 다음날에 다시 들어와서 이곳을 쓸어버릴 거다.
그런 식으로 말하니, 하씨도 한풀 기가 꺾이는 듯 싶었다.
그는 후회할 거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가 버렸다.

33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24:44 ID:YL08tlViuzg
나는 정호연을 묶은 밧줄을 끊어내며 서럽게 울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설움과 분노가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는 한없이 말도 않고 울기만 했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33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25:33 ID:YL08tlViuzg
협박이 효과가 있었는지 사람들은 더 이상 정호연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날이 지나갔다.
그렇게 사,나흘정도 지났을까. 난데없이 레이가 섬에 나타났다.

33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26:53 ID:YL08tlViuzg
해변가에 나타난 레이를 보고 나는 기절할 듯이 놀라 동굴로 숨어들었다.
정호연에게 말하니, 그는 레이가 원래 간혹 섬을 살피러 온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의 동굴에 있던 커다란 항아리 안에 숨어서 레이가 그냥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33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28:49 ID:YL08tlViuzg
이윽고 레이가 동굴까지 왔는지 말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안부를 묻는 것 같았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몇 번 오고 갔다.
한참을 숨죽여 기다리던 나는 레이의 한 마디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 거짓말을 잘 하네요.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33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30:12 ID:YL08tlViuzg
생각해 보면 지극히 간단한 이야기였다.
레이, 세이, 진은 내가 있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최초의 3인.
아마 섬을 처음으로 만든 것도 그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무슨 능력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그저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된 채로
레이가 돌을 던져 항아리를 깨부수고 분노에 가득찬 시선을 보내는 걸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33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31:04 ID:YL08tlViuzg
레이는 일주일 간 머리를 식히라고 말하며 내 눈을 감겼다.
눈을 뜨니, 그곳은 내 침대였다. 현실로 또 추방된 것이었다.

33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34:18 ID:YL08tlViuzg
현실에서 나는 감정을 추스르며
최대한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 때의 꿈 속 상황은 정말 꼬일 대로 꼬여 있었고
내 두뇌는 허약해져서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아 정말 힘들었다.
돌아가면 영구 추방령이 내릴까봐 두려웠고
내가 돌아갔을 때 정호연이 추방을 당한 뒤였을까봐 무서웠다.

33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35:31 ID:YL08tlViuzg
일주일 동안 나는 레이에게 할 온갖 변명을 생각해내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이런저런 거짓말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최선으로 떠오른 것은
차라리 나와 정호연만 따로 살 수 있는 섬을 마련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34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37:12 ID:YL08tlViuzg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양분된 감정이 더욱 격해졌다.
공포스러운 상황을 대면하기 싫어서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나를 그리워하며 홀로 레이의 심문을 받아내고 있을 정호연을 보고 싶어
어서 날이 지났으면 하는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일주일이 지났고 나는 다시 꿈으로 진입했다.
아니, 그 때에는 진입했다기보다는 소환당한 것 같았다.

34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38:03 ID:YL08tlViuzg
평소에는 섬에 진입하면 전날 깼던 자리였지만
그 날은 이상하게도 세이의 집이였다. 정호연도 옆에 있었고
문은 굳게 잠가져 있었다.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려니 진, 레이, 세이 세 사람이 모두 들어왔다.

34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8 23:39:13 ID:YL08tlViuzg
진은 더 이상 호통을 치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깊이 내쉬며 나에게 기나긴 설명을 했다.
갇힌 자와 정이 든 사람은, 그 정 때문에 중독자를 벗어날 수 없기에
일부러 분리를 한 것이라고. 대충 그런 설명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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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 이름 : 이름없음 ◆cP8KtJ8bf2 : 2012/12/02 07:57:17 ID:tH1D7Utz8Ug
이게 맞구나.
스레주다. 한 달 가까이 접속하지 못한 건...
그날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가 노트북을 부숴먹었다. -_-;
스마트폰이 없었고 시험시즌이 겹쳐있어서 올 엄두를 못 냈었어.
이제 와서 말해봐야 변명 같겠지만...

758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07:58:54 ID:tH1D7Utz8Ug
얼마 전에서야 중고 노트북을 장만했어.
레스가 폭발적으로 달려 있어서 쭉 훑어보고 검색도 해봤는데
의외로 많이 퍼져서 깜짝 놀랐다.
자작논란이 일어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759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08:01:10 ID:tH1D7Utz8Ug
굳이 믿어달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어.
다만 자작이라고 나를 깎아내리고 욕을 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말투가 맘에 안 든다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뭐랄까. 담담하게 얘기하려면 이런 글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글재주가 신필급은 아니라서 모두의 취향에 맞춰줄 수는 없으니까.

760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08:03:14 ID:tH1D7Utz8Ug
또, 중간에 아이디와 말투가 바뀌었다고 해서 하는 말인데
진에게 혼난 부분까지 전부 내가 쓴 거 맞아.
아이디는 자정을 기준으로 자동으로 바뀌니까 내가 말할 건 없고,
말투는 그날그날 쓸 때 기분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것일 뿐이야.
혹여나 누가 날 사칭한다면 인증코드를 요구하면 되잖아.

761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08:04:51 ID:tH1D7Utz8Ug
그리고.. 퍼가는 것이든 2차창작이든.. 하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해.
그런 것까지 터치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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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레주 부재 이후로 이어지는 내용 >>


831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0:40:48 ID:tH1D7Utz8Ug
나는 진한테 내가 생각했던 것을 빌다시피 말했어
염치없는 줄 알지만 한 번만 부탁을 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정호연과 내가 살 만한 아주 작은 섬을, 다른 곳과 교류하지 못하게
멀리 만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빌었다.
다시는 그곳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빌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836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0:43:22 ID:tH1D7Utz8Ug
진은 나보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느냐고 심하게 화를 냈어.
그러면서 생각이 짧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
정말 만들어 주면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 거 같냐면서.
진짜 몸이 남아 있는 사람과 갇힌 자라는 구성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838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0:44:51 ID:tH1D7Utz8Ug
그 말을 듣고 생각했던건.. 정말 순간이지만
나도 정호연처럼 갇힌 자가 되기 위한 시도를 해버릴까. 였다.
정신이 거의 뭐, 나갔다고 봐도 무방한 거지.
하지만 난 그 정도로 그가 좋았었어.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탓하지 않고,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섬을 따로 만들어 달라고 했어.


839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0:47:26 ID:tH1D7Utz8Ug
내가 하도 간절하게 부탁해서였는지 세 사람은 결국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정말 기뻤지만, 동시에 안심이 되면서 세사람에게 미안해졌지.
아주 먼 곳에서 솟아오르는 아담한 섬을 보면서
이번에는 어떻게든 잘 되지 않을까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했어.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바보같을 정도로 단순한 생각이었지.


845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0:51:11 ID:tH1D7Utz8Ug
다른 사람들이 위치를 보면 안 되었기에, 섬 주변을 안개로 뒤덮고 나서야 작업이 시작됐었어.
위치는 스카이블루 뒤쪽이었어, 스카이블루 주변의 회오리 때문에
미스틱이나 스카이그린에서는 볼 수 없는 위치에 생성되었지.
내가 본 것중에 가장 작은 섬이었어. 스카이블루의 1/5도 되지 않는.


851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0:57:14 ID:tH1D7Utz8Ug
섬 주변에는 짙은 안개가 항상 끼어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섬 이름은 안개꽃섬이 되었어. 레이가 섬이 너무 심심하다며
안개꽃 나무를 중앙에 하나 만들어 놓고 가기도 했으니 적당한 이름이었지.
현실의 안개꽃은 나무라기보다는 덤불 같은 느낌이지만
이건 벚꽃나무처럼 거대한 나무에 안개꽃이 항상 만개해 있었어.
아주 예뻤지.


855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00:00 ID:tH1D7Utz8Ug
그렇게 안개꽃섬에 나와 정호연, 둘이 남았어.
나는 이번에야말로 옛날처럼 낙원을 즐기며 살겠노라고
정호연과 맹세했고, 섬을 꾸미기 시작했어.
둘뿐이었지만 스카이블루를 한참 꾸밀 때 생각이 나서
많이 즐거웠지. 여름 방학을 그걸로 날려버렸던 거 같아.


862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04:10 ID:tH1D7Utz8Ug
2학기가 시작될 쯤엔 섬 보수가 완전히 끝나서
나와 그는 꽤 그럴싸한 오두막집을 짓고 잘 살고 있었어.
진, 레이, 세이는 약속했던 대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다른 섬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지. 궁금하긴 했지만 별로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나나 정호연이나.
정호연은 다시 한가롭게 새와 노는 취미를 들였어.
난 그가 옛날로 돌아온 것 같아 정말 기뻤지.


870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09:50 ID:tH1D7Utz8Ug
섬 주변에 안개가 짙게 껴있긴 했지만, 섬 전체로 퍼진 게 아니라
회오리처럼 안개의 원형 벽이 섬 주변을 감싼 형태라
섬의 날씨 자체는 매우 맑았었어. 우린 우유나 차를 마시고,
서로 새로운 요리를 연구하기도 하고 옷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지.
그러던 중에, 내가 감기에 걸려서 이틀 정도 꿈을 꾸지 못했어.
흔한 환절기 감기였어.


874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11:38 ID:tH1D7Utz8Ug
그런데 내가 평소에 건강이 약해서 좀 심하게 앓았었어.
가족들 말로는 내가 잠꼬대로 정호연이라는 이름을 엄청 크게 외친 적도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정호연이 누구냐는 질문 공세도 받았지.
뭐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렸었지만.
감기가 다 낫고 나서 다시 섬에 들어갔는데, 집에 들어간 내가 본 건
울고 있는 정호연이었어. 정말 놀랐지.


878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13:06 ID:tH1D7Utz8Ug
어디 다치거나 아픈 게 아닐까 했지만 그건 아니었어.
그는 나를 꼭 끌어안으면서 정말 보고 싶었다고 했어.
나에게는 2~3일이었지만, 그에게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었던 거야.
갑자기 일주일이 넘도록 내가 안 보였으니 얼마나 초조했을까 싶었어.


884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15:23 ID:tH1D7Utz8Ug
난 그를 끌어안고 감기에 걸려서 못 왔었다고 설명했어.
그는 앞으로 못 올 거 같으면 되도록 말이라도 해주라고 했지만...
솔직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은 거의 없었어. 왜냐면
나는 그때도, 지금까지도 그 꿈에 들어가는 방법은 모르니까.
그냥 잠을 자면 그 꿈을 꾸었을 뿐이었으니까.


886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17:23 ID:tH1D7Utz8Ug
물론 난 그것까지 솔직하게 말해줬어.
꿈에 들어올 지 아닐지 내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말해주기 힘들다고.
하지만 인위적으로 밤을 새거나 할 땐 꼭 말해주겠다고.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아직도 선해.


889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19:08 ID:tH1D7Utz8Ug
그는 그 이후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
내가 조금만 옆에 없어도 허둥지둥하며 눈에 띄게 평정심을 잃고
날 찾아다니기 시작했어.
그리고 날 찾으면 꽉 끌어안으면서, 언제라도 소리없이 사라져 버릴 거
같다고 끊임없이 말했지. 그런 그를 나는 위로했고.

나는 그게 일시적인 후유증일 거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괜찮아질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어.
그는 점점 더 불안 증세(딱히 칭할 말이 생각이 안 나네)가 심해졌어.
내가 아무리 심한 중독자라곤 해도 현실에서 깨어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섬에 없을 때가 많았는데, 그걸 못 견뎌하기 시작한 거야.



897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26:17 ID:tH1D7Utz8Ug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어.
스카이블루에서는 나 없이 혼자 숨어서 열악하게 살았는데도
그런 증세 따위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른 곳에 원인이 있나 생각해 봤지만 짚이는 것도 없었고.
그 때의 나는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를 잤어.
섬에 없는 때가 길면 7~8일, 짧으면 3~4일 정도.
정호연은 나에게 "일주일이 넘도록 없어서 불안하다"고 했었지만
실제로 그가 느낀 나의 공백은 2~3주에 가까웠겠지.


902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29:39 ID:tH1D7Utz8Ug
나는 어떻게든 그를 원래대로 돌리고 싶었어.
그래서 현실에 있을 때면 이야깃거리를 많이 끌어모았지.
관심도 없었던 영화나 연예게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학교 소식도 귀담아 듣기 시작했어.
그리고 내가 없을 동안 미치도록 외로웠을 그에게 최대한 재밌게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것 말고도 최대한 말을 많이 했고.


906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32:11 ID:tH1D7Utz8Ug
그래도 그는 나아지지 않았어.
내가 깨어날 시간이 될 때마다 그는 나를 몸이 바스러지게 끌어안았어.
그런다고 잠이 깨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시 섬에 갔을 때 그는 항상 울거나 좌절하고 있었어.
그가 했던 말 중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1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게 꽉 차있던 품이 갑자기 비고 찬바람이 들어오면 정말 죽어버릴 정도로 슬프다고.


913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33:35 ID:tH1D7Utz8Ug
급기야 그는 후회하기 시작했어.
자신이 어째서 갇힌 자가 되길 선택했는지
과거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다며 통곡을 한 적도 있었지.
나는 그에게 더 해줄 말도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어.


924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38:24 ID:tH1D7Utz8Ug
그는 울면서 나한테 말했었어.
그렇게 싫어서 세상을 버렸는데 내 얘기를 듣다 보니
다시 그리워진다고. 그 지긋지긋했던 곳이 그리워지는 기분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끔찍하다고.
이해는 했지만 결코 동감은 할 수 없는 이야기였고
나는 거기서 거대한 벽을 느꼈어.


928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40:36 ID:tH1D7Utz8Ug
꿈에 들어오면 현실에 대한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현실의 얘기를 어떻게든 떠올려서 하는 건 굉장한 곤욕이었어
근데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온 걸 보니 나도 정말 미칠 것 같았어


934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43:29 ID:tH1D7Utz8Ug
정호연은 섬에 있을 땐 이제 한시도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어
내가 잠시 혼자 산책을 한다거나, 잠깐 물을 떠오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했어. 사라질 것 같다면서.
같이 있을 땐 너무나도 좋고 친절한, 변함없는 정호연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그의 눈에 안 보이면 돌변해서 나에게 화를 냈어.
그가 변해가는걸 나는 매일매일 실시간으로 보아야 했고.


938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2 21:46:50 ID:tH1D7Utz8Ug
솔직히 짜증나고 화도 났고 괴로웠고
내가 왜 이래야 하는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었어
그렇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슬픈 감정이 더 컸다.
너무 안쓰럽고, 너무 슬프고, 너무 애잔하고.
가슴 속에 악의라고는 먼지만큼도 없는데
그가 수없이 입었을 상처를 내 두 눈으로 보고
내 두 귀로 듣고 내 두 팔로 끌어안는 기분이란.
그런데도 치유되지 않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는
느낌은 정말 지금 와서도.. 한 마디로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74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15:18 ID:KrIAJtb20rg
안타까워 미쳐버릴 거 같은 날이 계속 지나고 있었어.
나도 최대한 그의 곁에 있어 주고 싶어서
휴일이 되면 거의 하루종일 잠만 잤다.
그는 내 건강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매우 좋아했어
나는 이게 최선일까? 하고 매일매일 고민했지.
진지하게 나도 갇힌 자가 되기 위해 시도해 볼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75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16:47 ID:KrIAJtb20rg
인터넷으로 자살하는 방법이라던가 이딴거나 치고 있었고..
현실에서 누군가 날 도와주지 않을까 해서
인터넷 지인들한테 비슷하게 얘기를 꺼내 봤지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중2병 취급을 받았어
그러는 동안에 가을이 되어갔고
정호연은 점점 증세가 심해져서 심지어는 자해를 하기 시작했어


76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18:50 ID:KrIAJtb20rg
처음 알아차린 것은 10월 초였던 것 같아.
새들이 놀라서 푸드덕대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서 정호연이
끝이 뾰족한 돌로 자기 팔을 긁어대고 있었지
나는 정말 기절할 듯이 놀라서 그를 뜯어말렸어.


77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20:06 ID:KrIAJtb20rg
안정된 후에 정호연은 내게 말했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없는 시간을 버틸 수가 없다고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 그저 그를 끌어안았을 뿐.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문득 정말 문득 수면제를 보다가
한 생각이 떠올랐어 "수면"에 관한 생각이.


78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21:29 ID:KrIAJtb20rg
앞에서도 말했지만
섬에서는 "수면"의 개념이 없어. 낮밤은 있지만 계속 깨어 있지.
정호연이 내 공백을 버티기 힘들어했던 건 그 이유도 있었을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 진, 레이, 세이에게 부탁하는 걸.
정호연이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잠을 자게 해 달라고.
여태까지 신세를 진 걸 생각하면 정말 낯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때 나는
솔직히.. 매우 이기적이었어.


79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24:42 ID:KrIAJtb20rg
세 사람은 처음 안개꽃섬을 만든 이후로는
정말로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어.
나는 어떻게든 세 사람을 부르려고 애를 써 봤어
간원의 힘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서 파도를 일으켰지만
안개의 벽에 부딪치자마자 스러져 버렸고
소리를 아무리 질러도 그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어
당연하지만, 헤엄을 쳐서도 나갈 수 없었고
이럴 거면 이탈 시도를 하지 말라는 따위의 말은 왜 했는지 원망스러웠다.


80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29:02 ID:KrIAJtb20rg
정호연도 내 설명을 듣고는 수긍했어.
잠을 잘 수 있다면 한결 낫겠지, 하고.
하지만 세 사람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나타나지 않았어.
그렇게 한 사나흘쯤 지났던가.
꿈에 진입했는데 정호연이 보이질 않았어.


81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31:19 ID:KrIAJtb20rg
불안한 느낌에 미친 듯이 섬을 뒤지던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안개꽃나무가 있는 중앙으로 갔어.
거기에 정호연이 쓰러져 있었고
그토록 불러도 오지 않았던 세 사람도 있었다.


82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32:21 ID:KrIAJtb20rg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것인지
그 커다란 안개꽃나무는 깔끔하게 베여서 뒤로 넘어가 있었어.
복잡한 감정에 말을 못 꺼내고 있는데 세 사람이 쓰게 웃었지.
그 표정을 보고 난 짐작할 수 있었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구나 하고.


83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35:34 ID:KrIAJtb20rg
정호연은 기절해 있었는데, 손이 다 까져 있었다
어찌 할 바 없이 그 손만 만지면서, 나는 말했어
섬의 갇힌 자들이 수면을 하게 하는 방법은 없냐고.
하지만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어.
기절시키는 게, 정신을 잃는다는 면에서는 수면과 가장 흡사하다고 한
잔인한 대답만 남았지.


89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39:32 ID:KrIAJtb20rg
진은 그거 말고는 나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했어.
난 그저 계속, 고장난 기계마냥 정말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냉정했어. 절대 없다고.
난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어. 정말 온갖 설움이며 슬픔이
한꺼번에 폭발해서 펑펑 울었지.


90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40:58 ID:KrIAJtb20rg
그러자 세이가 맘이 약해졌는지 나한테 대안을 제시했어
수면은 불가능하지만, 정신을 잃게는 할 수 있으니까
자기가 이 섬에 남아서 내가 나갈 때마다 정호연을 가사상태로
만들어 놓는 건 어떻겠느냐고.
그것 말고는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나는 일단 허락했어.
그런데 진과 레이가 세이를 극렬하게 말렸어.


92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43:01 ID:KrIAJtb20rg
뭔가 많은 말이 오갔던 것 같지만
가장 기억나는 말이 하나 있어.
"이런 식의 해결책으로는 진짜 낙원이 될 수 없어"였어.
하지만 세이가 워낙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결국 진과 레이만 돌아갔어. 진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세이한테 경고 비슷한 걸 남겼고.


93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46:51 ID:KrIAJtb20rg
나와 세이는 정호연이 깨어나길 기다렸다가
아까 했던 말을 전했어.
그가 반대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의외로 너무나도 순순하게
그러마고 했어. 그래서 호연은 내가 나갈 때마다 세이의 손에 의해
기절했지. 입맛이 썼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그의 증상이
많이 나아지는 것 같아서 그걸로 위안삼았지.


94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50:03 ID:KrIAJtb20rg
세이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했어.
내가 정호연과 있을 때 세이는 혼자서 섬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집 안에 있었어. 우릴 배려한 거였겠지.
정호연은 점점 안정되어가서 예전의 모습을 다 되찾은 것처럼 보였어
그때쯤 해서 세이가 말을 꺼냈지
바깥 상황은 아수라장일 거라고.


95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51:22 ID:KrIAJtb20rg
예상 못한건 아니였지만 세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거에 놀라서
나는 진지하게 물어봤어. 어떻냐고.
세이는 뜬금없이 자신들은 원래 완벽한 낙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어.
이번이 첫번째가 아니라고도 했고.
솔직히 첫번째가 아니라는 말엔 정말 놀랐다.


96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53:28 ID:KrIAJtb20rg
나 이전에도 섬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묘했지. 세이는 그런 나한테 예전 시도가 모두 실패였다고 했어.
난 물어봤지. 그럼 실패한 낙원은 어떻게 됐냐고.
세이가 답했어. 없애거나, 아니면 새로운 세상으로 남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97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54:56 ID:KrIAJtb20rg
이번에는 정말 성공할 것 같았대.
그런데 중독자가 발생하고 갇힌 자가 발생하고...
그런 와중에 가장 그 변화가 빨랐던 게 나였다고 했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겠지. 내가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가장 먼저
스카이블루에 떨어졌으니까.


98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56:29 ID:KrIAJtb20rg
그래서 세 사람은 나에게 이목을 집중했고
내 부탁도 웬만해서는 들어줬던 거라고 했어.
나한테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해는 갔는데, 조금은 서글펐어.
내 부탁을 들어줬던 이유에, 단순한 호의만이 아니라 계산적인 생각이 섞여
있었으니까.


99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1:59:18 ID:KrIAJtb20rg
너무 안일했던 걸까.
난 다시 물어봤었어. 그래서, 나한테서 해결책을 찾았느냐고.
세이는 모르겠다고 했어. 찾은 것 같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부정할 수가 없었기에 난 그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지.


100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2:01:57 ID:KrIAJtb20rg
세이는 그 후로 다른 섬 이야기를 해주었어.
먼저, 스카이그린도 중독자가 무수히 생겨났다고 했어.
진이 임시방편으로 며칠이 지나면 강제로 추방해버리는 방법을 썼는데,
그렇게 하자 갇힌 자가 갑자기 급증해 버렸다고.
진은 너무 놀라서 추방을 그만두었다고 했지.


101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2:04:24 ID:KrIAJtb20rg
어쩔 수 없이 세 사람은 스카이그린을 '중독자들의 섬'으로 구분짓고
중독자라 판명된 사람들을 모두 스카이그린으로 옮겼다고 해.
아직 봉쇄는 하지 않았지만 상태가 심각해지면
봉쇄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어.


102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2:06:16 ID:KrIAJtb20rg
또, 미스틱에 남은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감돈다는 말도 했어.
난 그게 뭔지 잘 몰랐지. 세이도 잘 설명하지 못했고.
하지만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어.


103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2:07:57 ID:KrIAJtb20rg
난 바깥 세상이 걱정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또 기뻤어.
계산적인 생각이 들어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걸 확인받은 셈이었으니까.
정호연의 증상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고
나는 서서히 다른 섬이 어찌되든 이곳만 괜찮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매우 이기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지.


105 이름 : 이름없음 : 2012/12/04 02:08:36 ID:KrIAJtb20rg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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