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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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이야기

[일본 번역괴담] 목매다는 마을

탱녀 2022. 3. 2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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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꽤 오래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이야기입니다.

신문에 실리기도 한 사건이었으므로, 신변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느정도 거짓이 섞여 있습니다.


저는 규슈의 한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도시까지 전철로 1시간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입니다.

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큰 간선도로가 지나고, 어째서인지 큰 병원도 있고 해서 나름대로 활기가 있는 마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봉오도리(8월 15일 즈음의 일본의 명절이며 지역마다 날짜가 조금씩 다릅니다.

행사장에서 일반인들이 춤을 추고, 신사에서 무녀나 신관이 춤과 음악을 신에게 봉헌하는 것이 주된 행사입니다.)

가 열리고 있는 신사에 형과 함께 놀러갔을 때의 일.

저와 형은 한 살 차이가 나는 형제로, 분명 여동생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초등학생이전의 기억은 애매모호해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일은,

우리 형제는 어머니와 조부모님 이렇게 다섯이서 살고 있었던것입니다.

아마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을 했을 때, 여동생은 아버지가 데리고 가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봉오도리 행사장에는, 작은 마을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망루가 있고,

장단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오바Q선창(1966년 발표된 곡) 같은 노래에 맞춰 모두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형과 함께 야시장을 둘러보고, 어머니가 주신 용돈을 어떻게 쓸지 고심하면서 즐겁게 놀며 돌아다녔습니다.

솜사탕이나 타코야키, 전병 등으로 배를 불린 뒤, 저는 춤추는 무리에 끼고 싶었습니다만,

형이 싫어했기 때문에 야시장 옆에서 곁눈질하며 춤추고 있었습니다.


한참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 문득 어디선가 시선을 느꼈습니다.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니, 벤치에 앉은 할머니가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머니는 앉은 채로 양손만 봉오도리 안무에 맞춰 움직이신 뒤 저를 향해 오라고 손짓을 했어요.

할머니 가까이로 가니, “할머니를 따라해봐”라며 봉오도리 안무를 손으로 보여줬어요.

좌로우로, 양손을 빙글 돌리면서 우아하게 움직이는 춤동작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열심히 따라하며 손을 흔들었어요.

“잘 했다. 자, 다리도 움직여봐”

그 말을 듣고 할머니를 보니 할머니는 앉은 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리가 불편하셨을 거라 알 수 있습니다만,

당시의 어렸던 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고 “할머니도 해봐요”라고 말해 할머니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문득 할머니가 춤추는 무리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어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듯한 행동을 했습니다.

뒤돌아보니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춤추는 무리에서 빠져나와 이쪽으로 달려온 사람은 저와 동년배이거나 조금 연상인 여자아이였습니다.

예쁜 유카타를 입고 춤을 췄기 때문인지 땀투성이가 된 그 여자아이는,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보며,

“글쎄?”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사츠키, 이 아이에게 춤 좀 가르쳐 줄래?”

할머니는 싱글벙글하며 사츠키에게 말했습니다.

“좋아! 넌 누구야?”

사츠키는 저에게 만면에 웃음을 지어주었습니다.

저는 자기소개를 하고, 멀리서 금붕어 잡기를 하고 있는 형을 가리키며 함께 축제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흐-응.”

사츠키는 형을 보고 말했습니다,

“그럼 해볼까!”

하며 그 자리에서 춤을 선보였습니다.


마침 스피커에서 탄갱절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그 소리에 맞춰 좌로 우로 아래로 손을 흔들며 발걸음을 옮겨 안무를 보여줍니다.

야시장의 불빛에 비친 그 모습은 정말 예쁘고,

나는 마침 망루를 등지고 신사 밖으로 향하는 형태로 사츠키를 보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어둠이 뒤로 펼쳐진 가운데 불빛에 떠오른 사츠키의 모습은 환상적으로 보였습니다.

“어때? 알겠어?”

탄갱절에 맞춘 춤을 추고 난 사츠키가 활짝 웃으며 묻습니다.

멍하니 사츠키를 보고 있던 저는 “어… 아…”와 같은 말도 안되는 이상한 소리를 낸 것 같습니다.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어요.

“뭐, 한 번으로는 알기 어렵지! 처음부터 알려 줄게!”

사츠키는 괜히 씩씩하게 활짝 웃습니다.

이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저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신사에 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안무를 배워, 상당히 시간이 걸렸지만 탄갱절을 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잠깐 기다려봐!”

그렇게 말하고 사츠키는 어딘가로 달려갔습니다.

옆을 보니 할머니가 싱글벙글하며 보고 있었어요.

“잘한다 잘한다. 이제 출 수 있게 됐네.”

그렇게 말하며 손뼉을 치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기쁘고 쑥스러워서 말문이 막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츠키가 돌아왔어요.

“마지막으로 탄갱절을 틀어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다음에 탄갱절이 나오면 같이 춤추자.”

하고 제 손을 끌며 춤추는 무리 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형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사츠키에게 손을 잡혀 끌려가는 저를 보고 놀랐어요.

“시노미야잖아, 뭐하는 거야?”

형을 아무래도 사츠키를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바야시잖아, 얘가 네 동생이야? 춤이 늘었어!”

사츠키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참고로 시노미야라고 하는 것은 사츠키의 성, 고바야시가 우리들의 성입니다.


잠시 무리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스피커에서 탄갱절이 흘러나왔습니다.

짝짝짜작짜자작 손벽을 치는 무리안에 들어가, 사츠키 뒤에서 긴장하며 춤이 시작되기를 기다립니다.

형이 신기하게 보고 있었어요.

“달이~ 떴다~ 떴다~ 떴다~ 달이 떴다~ 아 좋아 아 좋아 좋아!”

노래에 맞춰 외운 안무를 정신없이 췄습니다.

도중에 실수하여 당황할 뻔했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주위사람들도 꽤 엉터리로 춤을 추고 있고,

이런 정도라도 되는가 하고 납득하고 나니 즐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시야 가득히 켜진 초롱불.

그 붉은 빛과 뒤의 어두운 밤하늘 가운데에서 선창에 맞추어 정신없이 춤을 췄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고양감과 일체감에 도취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그 후 봉오도리의 무리 안에서 춤추는 꿈을 여러 번 꾸게 됩니다.


그 일로 완전히 사츠키에게 빠진 저는 종종 사츠키에게 부탁해 신사에서 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츠키는 신사 분가의 딸로 신사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 자주 신사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축제 때 말을 걸어 주신 분은 본가의 할머니, 현재 신주의 어머니에 해당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할머니가 상당한 걸물로 시즈님, 시즈할머니로 불렸습니다.


선대 신주의 집에 시집온 것은 좋았습니다만, 가정을 지키는데 열심히인가 했더니,

정작 선대 신주 이상의 역량으로 액막이나 기도를 하게 되어,

신주가 아닌 신에게 시집온 새 며느리라고 규슈의 신사계에서 평판이 자자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인 줄도 모르고, 신사에 갈때마다 시즈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도 방문하여 손수 우려낸 보리차를 대접받곤 했습니다.


형과 사츠키는 동급생으로 봉오도리를 계기로 학교에서도 대화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둘이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고, 사츠키는 한층 더 여성스럽고 예뻐졌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것이 계기였는지, 형과 사츠키가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저로서는 실연을 당한것이지요.

하지만 전과 같이 셋이서 잘 놀았습니다.


이따금 형과 사츠키가 서로를 의식하여 잠자코 있거나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너무 두 사람이 순진했기 때문에 저는 조바심을 내며 “됐으니까 빨리 손이나 잡아”라거나 “적당히 키스해”라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케이! 아 진짜!”

하고 사츠키는 화를 내는데, 그 화난 모습 또한 귀여워 보여서 나로서는 착잡한 기분이었습니다.

“케이타, 너 이따가 죽일거야.”

형도 빨갛게 상기되면서 불만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그날은 셋이서 모여 신사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주의 봉오도리에 대비해 경내의 잡초 뽑기라든가 무엇인가를 하는거죠.

사츠키는 분가의 딸이며,

중학교 졸업 후 무녀가 되기로 결정하였으므로 당연히 견습 소승 같은 느낌으로 용돈을 받아 신사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빈틈없이 청소하고 그날 할 일은 끝났어요.

시즈할머니께서 끓여주신 보리차를 툇마루에 앉아 대접받고 있는데, 두 사람이 경내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참배길을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오라! 야라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싸움입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왠지 싸움을 할 때는 신사에서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체육관 뒤가 아닌 신사입니다.

당시 학교에는 아직 불량배 같은 것이 있었고, 불량배들 중에 우두머리가 있는게 보통이었어요.

“카나모리 선배다.”

형이 말했습니다.

카나모리 선배와는 나도 형도 잘 아는 인물로 형보다 한 살 위입니다.

어렸을 때는 짱구라고 부르며 자주 놀았던 기억이 나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불량해지기 시작했고, 왠지 소원해져버린 친구입니다.


2학년인 카나모리 선배가 당시 짱이었던 3학년 학생에게 싸움을 신청한 것 같았습니다.

카나모리 선배는 현지 폭주족 집회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고 하는데, 부모님들의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폭주족이라고 해도 마을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폭주족과 항쟁을 시작하거나 세력권 다툼을 하거나 하는 것도 없고,

굳이 말하자면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귀엽고 이상한 모임이었습니다.

싸움은 3학년의 승리로 끝난 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3학년의 모습을 배웅하고나서 우리는 카나모리 선배에게 달려갔습니다.

“다쳤으면 데려오너라.”

하고 뒤에서 시즈할머니가 말했어요.

싸움에서 진 카나모리 선배는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가가자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혀를 찼어요.

“쯧, 보는 거 아니다.”

힘없이 중얼거리는 카나모리 선배 곁에 형이 다가와 어깨를 빌려 일으켜 세웁니다.

“아파, 잠깐, 천천히…”

카나모리 선배는 아무래도 다리를 삐어 아픈 듯 일어섰습니다.

선배가 말하길 다리를 삐지 않았다면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걷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저도 형의 반대편에서 선배를 부축해서 시즈 할머니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시즈할머니는 즉시 찜질과 붕대를 준비하고 치료를 해주셨어요.

카나모리 선배는 시즈할머니에게 허리를 굽혀 돌아갔습니다.

불량배인 주제에 예의바른 카나모리 선배였습니다.

“앗짱은 싸우면 안 돼.”

사츠키가 형에게 말했습니다.

앗짱이며 아키오인 형은 “난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해”라고 말했지만, 날것의 싸움을 보고 조금 흥분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평범한, 아주 흔한 시골의 여름, 기이함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2화

회람판을 든 어머니가 형과 저에게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들개가 활발해지는 것 같으니 너희들도 조심해라. 길거리에도 나오고 있대.”

곤란하-네-라며 소 같은 소리를 내고 어머니는 옆집으로 회람판을 돌리러 가셨습니다.


당시 우리 마을을 둘러싼 산 속에는 야생화된 들개가 많이 있어서,

산나물을 캐러 산에 들어갈 때는 충분히 주의하는 것이 철칙이었습니다.

가끔 사냥회에서 몇 마리씩 솎아 내기도 하지만, 들개는 전혀 수가 줄지 않고,

또 옛날부터 변함없는 지방의 골치거리여서,

걱정을 하면서도 들개와는 공생하고 있었습니다.


들개가 산에서 마을로 내려왔다.


지금까지도 가끔 일어나는 일입니다만, 그때마다 보건소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였습니다.

들개뿐 아니라 원숭이 등도 가끔 거리에 나타납니다.

하굣길에 포획용 큰 그물을 가진 집단을 발견하고,

그대로 대형 포획물을 구경하는 것이 작은 마을의 큰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나처럼 형과 신사로 향하고 있을 때,

전신주에 “위험 동물 주의! ◯월 ◯일, 이 부근에서 들개가 목격되었습니다.

위험하오니 접촉을 지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목격 정보는 ◯◯시청 담당 ◯◯에게”라는 벽보가 붙어 있었습니다.


집근처에 위험한 동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을 가슴 한구석에 안고 우리는 신사로 서둘렀습니다.

신사에 도착하니 어른들이 여럿 모여 시끌벅적하였습니다.

축제때와 비슷한 어른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귀에 들려옵니다.

아무래도 사냥회의 사람들이, 지금부터 산에 들어가기 위해 모여 있는 것 같았어요.


신사는 산으로 통하는 산기슭 부근에 있어 마을에서 산으로 들어가려면 필연적으로 신사 앞을 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집합 장소가 신사가 되는 것은 평소와 같은 일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사냥회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가 들개 등을 구제할 것입니다.

가끔 사슴 따위를 쏜 날에는 흥분이 식지 않은 모습으로 소란을 피우며 개선하고는 합니다.


그런, 늘 하던 대로의 광경이, 지금부터 시작될 공포의 시작이었습니다.


본전에 참배하고 사냥회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배웅한 우리는 언제나처럼 신사의 심부름을 하며 눈앞에 다가온 봉오도리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망루에 쓸 목재를 준비하기도 하고,

초롱불이 도착했는지 일일이 점검하기도 하며,

어른들 틈에 섞여 우리도 일하고 있었습니다.


사츠키는 올해 처음으로 추는 무녀의 춤의 안무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가르치고 있는 것은 시즈할머니입니다.

저와 형은 무녀복으로 카구라(일본에서 신에게 제사지낼 때 연주하는 무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츠키를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봉오도리까지 3일.


그날 산에 들어갔던 사냥꾼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다음날이 되어도 누구 하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익숙한 산속입니다.

사냥꾼들이 조난을 당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조난당했다고 해도 이 기온에서 죽지는 않겠지만, 어떠한 원인으로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준비에 쫓기는 우리들은 그런 이상사태의 와중에도, 손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신사의 경내에서 신주와 순경, 게다가 사냥회의 가족들이 산쪽을 보면서 상담하고 있었습니다.

준비를 하면서 들은 대화의 내용은, 화산가스가….,, 들개의 무리일지도…., 굴러떨어졌다….,

같은 느낌으로, 모두 불안한듯 계속해서 서로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순경 외 몇 명의 어른이 산에 들어가보게 되었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순경과 다른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막연한 불안이 경내에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순경과 어른들이 산에 들어간지 수시간,

산길 쪽을 보니 조금전에 산에 들어간 어른들이 헉헉거리며 산길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어요.


“순경 아저씨들이 돌아왔어요!”


라고 큰 소리로 모두에게 전하고, 신주를 부르러 본전으로 향했습니다.

돌아온 어른들은 모두 얼굴이 창백했고, 필사적으로 달려온 듯 헤엑헤엑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땠습니까?”

신주가 순경에게 물어봤습니다.

순경은 무릎을 짚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죽었어요. 목을 매달았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후, ◯◯현 경찰이라고 쓰여진 경찰차와 구급차가 여러 대 경내에 들어왔습니다.

그날 다시 산에 들어가, 산중턱에 목을 매고 있던 사냥꾼들의 시신을 수습해왔습니다.

신주는 정장을 하고 산에 동행해 주위를 불제하면서 모두를 보호하듯 이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사냥꾼들은 산길 양 옆에 줄을 서서 목을 매고 있었다고 합니다.

들개를 잡으러 산에 들어간 사냥꾼들의 집단 자살.

정성스럽게 새 밧줄까지 준비해서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타살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 듯, 산길에 노란 테이프가 붙여져 산은 봉쇄되었습니다.


봉오도리 전날.


사건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사냥꾼들이 집단으로 죽은 것을 아는 사람은 어제 산을 들어간

어른들과 경찰, 동네 의사들, 면사무소 사람들, 유족, 그리고 경내에 있던 우리들뿐이었습니다.

사냥꾼들을 살해한 범인이 근방을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운데,

과연 봉오도리를 개최해야 하는지가 논의되었습니다.

밤늦게까지 경찰, 동사무소 사람들과 상의하여 봉오도리를 중지하지 않기로 결정한 신주는

다음날 아침에는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겨있었습니다.

아마 한숨도 못잔 것 같았습니다.


아침부터 어른들이 망루를 올리고 초롱에 불을 붙입니다.

스피커니 쓰레기통이니 하는 것을 다 설치하자 우리가 할 일은 없어졌습니다.

시각은 오후가 지나 어제까지의 준비가 탄탄했던 덕분인지 봉오도리 전날은 매우 느긋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무녀의 춤을 추는 사츠키는 귀기가 도는 모습으로 시즈할머니 앞에서 카구라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형은 사츠키의 연습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기에 좀 쑥스러워했지만,

“내일은 신의 앞에서 춤을 추는 거다. 인간 상대로 움츠러들 때가 아니지”

라고 시즈 할머니에게 야단맞고 있었습니다.


산길쪽을 보니 경찰들이 산길 주위를 살피며 산으로 들어갔어요.


내일의 봉오도리.


죽은 사냥꾼들.


잇따른 들개 목격 제보.


어제는 원숭이까지 마을에 나왔다고 합니다.


산이 이상하다.


너무나 큰 상상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불안감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임박한 위협이라고 느끼는 것도 아니고, 일상과 다름없는 시간 속에서,

마치 배앓이를 할 때와 같은 불쾌감으로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봉오도리 당일.


우리는 아침부터 경내에 모여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어떠냐 저것은 어째서냐 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입니다만.

어른들도 들떠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노점상의 사람들이 느긋이 포장마차를 조립하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봉오도리의 개최를 알리는 불꽅놀이가 시작됐습니다.


신당의 툇마루에 앉아 쉬고 있는데, 사츠키가 찾아왔습니다.

이미 무녀복을 입고 있었지만, 머리만 아직 묶지 않은 생머리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코스프레같다고 느껴지지만,

당시 우리는 무녀복 차림의 사츠키를 넋을 잃고 바라볼 뿐 ‘아’라든가 ‘오’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우우우-…. 긴장된다.”

사츠키는 안절부절못하며 어슬렁어슬렁거렸습니다.

동물원의 곰처럼 왔다가 갔다가.


이제 진정하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진정할 수 있을리 없다는 것은 나도 형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사츠키의 공식적인 무대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반주가 시작될 무렵에는, 마을 사람들이 경내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유카타를 입은 부녀회 아줌마들이 빠르게 춤을 추며 원을 만들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도 춤의 원에 가담해 갔고, 이윽고 익숙한 봉오도리의 경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아키오, 케이타. 수고했네.”

뒤에서 시즈할머니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머지는 어른들께 맡기고 너희들은 축제를 즐기고 오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저희에게 용돈을 주셨어요.

중학생과 초등학생에게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크게 기뻐하며 포장마차를 끝에서부터 돌았습니다.


순경 등 경찰관련 사람들이 사복차림으로 경내를 순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불안했지만 주위에는 아는 어른들의 얼굴로 넘쳐나서 곧 정신을 차리고 포장마차 돌기를 계속했어요.


드디어 사츠키가 나갈 차례가 되었습니다.

봉오도리의 음반이 일단 멈추고,

제구전(카구라에 쓰는 악기를 보관하는 곳)에서 무녀의 춤을 봉납한다는 것을 알립니다.


본전 옆에 있는 제구전의 맨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우리는 사츠키의 등장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제례음악의 소리와 함께 사츠키가 조용히 제구전에 나타났습니다.

아까까지의 긴장한 표정은 아니고, 조금 턱을 들어 투명한 표정으로 앞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손에 쥔 벼이삭 모양의 뭔가를 흔들며, 방울을 울리고, 부채를 팔랑팔랑 흔들며, 사츠키는 우아하게 춤을 추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츠키가 처음으로 춤을 보여줬던 그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환상적이고 뇌리에 박혀있는 그 모습이 지금 제구전에서 춤추고 있는 사츠키의 모습과 겹쳐졌습니다.


사츠키는 신이 되어버렸다.


왠지 그렇게 느껴졌어요.


챠륵..하고 방울 소리가 울리고, 사츠키가 춤을 끝냈습니다.

박수를 치려고 손을 마주 쳤는데, 뒤에서 머리를 철썩 때렸습니다.

뒤를 보니 집 근처의 아저씨였어요.

“주위를 봐라. 아무도 박수를 안 치지? 사츠키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위해 춤을 추는 거란다. 우리가 박수칠 일이 아니야.”

과연,하고 납득하며 사츠키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 사츠키는 먼 곳으로 시선을 보냈습니다.

거리상으로 우리가 있는 근처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신께 춤을 바치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아무래도 조금전의 사츠키 자신이 신이 되어 춤추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카구라 가면을 쓴 사츠키가 춤추기 시작할 때 그곳에 있는 것은 분명 사츠키일텐데, 저에게는 사츠키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마치 사츠키의 모습을 흉내내며 춤추고 있는듯한, 그런 이상한 광경으로 저는 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모든 춤을 마친 사츠키가 조용히 제구전 뒷편으로 사라집니다.


그때, 후-하고 한바탕 바람이 경내에 휘몰아쳤습니다.

나무를 흔든 그 바람은 모두의 몸을 어루만지고 산으로 넘어갔어요.

모두가 후하고 숨을 내쉬며 봉납의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나왔고 다시 봉오도리 음반을 틀었습니다.

그날 밤, 고열을 내며 가위에 눌리고 있는 사츠키가 누운 이불 옆에서, 저와 형은 병간호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에게 바치는 춤을 추고 난 사츠키는 비록 피곤하기는 했지만,

씩씩하게 웃고 있었지만, 점차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쭈그려 앉아 끙끙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다급하게 시즈할머니를 부르러갔습니다.

우리에게 이끌리며 찾아온 시즈할머니는 사츠키를 보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신이 내렸을 때는 가끔 이렇게 열이 난단다. 나도 경험이 있어, 괜찮을게다.”

사츠키를 위해 이불을 깔며 시즈할머니는 사츠키와 우리에게 설명해주었어요.

“그나저나 사츠키, 너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구나. 본가의 양자가 되면 분명 신이 너를 도울거야.”

“에… 싫어… 엄마…”

사츠키는 가쁜 숨을 쉬며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후후후, 물론 사츠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말이야.”

시즈할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이불 위에 누운 사츠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자아, 오늘은 그만 자렴. 여기에 있다고 어머니께 연락해 놓을게.

너희들도 축제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 사츠키는 곧 좋아질 테니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라.”

그렇게 말하며 우리에게 귀가를 재촉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시즈할머니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신내림.


그때 사츠키는 신에 들려있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가장 다른 사람같았던 인상이 강한 카구라 가면을 쓰고 있었을 때.

사츠키는 틀림없이 신에게 몸을 빼았겼던거야.


빼았겼다는 표현은 너무 강한 표현이지만 당시의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다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끝난 봉오도리의 다음날,

우리는 뒷정리를 위해 아침부터 신사에 갔습니다.

신사에 도착하니 이미 신관들이 망루를 해체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는 옆으로 달려나가 시즈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니 사츠키가 나왔어요.


어제의 고열이 거짓말처럼, 원기왕성한 사츠키는 활짝 웃으며,

“이제 괜찮아! 걱정하게 했네.”

라고 V자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정리를 하면서, 어제 사츠키는 굉장했었느니,

시즈할머니에게 용돈을 받고 아직 남아있다느니,

오늘은 어디로 갈거냐느니 하며 어제의 흥분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리도 일단락되었을 때 자동차 한 대가 경내로 들어왔습니다.

앞유리 안쪽에 붉은 램프가 놓여 있기 때문에 경찰마크가 없는 경찰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의 우리들은 알수 없었습니다만, 나중에 조사해 알게된 것으로,

원령들에 의해 알게된 이 마을의 역사와 가공할 만한 업적들,

그리고 제가 아는 범위에서의 사건의 진상을 바탕으로,

시간순으로 써나가겠습니다.




3화

봉오도리 당일에 경찰에서 부검한 결과, 산에서 죽은 사냥회 사람들의 사인이 판명되었습니다.

사인은 뇌출혈에 의한 돌연사.

목을 맨 것에 의한 질식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즉, 모두가 같은 증상으로 돌연사한 후에 목을 매달았다는 것이 됩니다.


이 시점에서 경찰은 완전히 속수무책.

외상 없이 뇌출혈을 일으켜 살해하는 것은 전대미문이며, 그러한 방법도 독극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찰은 피해자의 과거 병력과 통원이력을 샅샅이 조사했고,

유가족에 대한 청취도 신중하게 실시하고, 그 결과 계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서류에 기록했지만,

무엇을 조사해야 할지 감도 못잡은 상태에서 계속되는 수사의 담당자조차 정해지지 않은 채 신주님께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사인이 판명된 시점에서 수사관의 머릿속에는 ‘이거 재액이지?’라는 생각이 거의 굳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렇다고 해서 그런 미신적인 내용을 보고서에 기재할 수 있을리 도 없고, 지속적인 취급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현대의 과학에서도 의도적으로 단시간에 동맥류 등을 만들어 뇌를 파열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당시의 기술로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재액이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됐기에,

그러한 역사가 과거에 없었는가 하는 것을 신주애게 물은 경찰은,

그런 역사는 없다는 신주의 대답에 매우 곤란한 모양으로,

어떻게든 도와달라고 호소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한편 과학적인 설명을 전혀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오자 신주와 유족들은,

이것 또한 재액이라든가 신을 거슬리게 했다든가 하는 방면으로 진상 규명에 나섰습니다.


봉쇄된 산에 들어가서, 먼저 사냥꾼들이 목을 매고 있던 곳에서 액막이가 거행되었습니다.

그 후 산을 돌아다니며 산 전체를 깨끗하게 하겠다는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최초의 액막이 시점부터 벌써 이상했다고 합니다.


산길의 목을 맨 현장에서 신주가 액막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준비해둔 제사상의 야채를 보니 이미 상해있었습니다.

술은 탁해지고, 소금은 검게 변색되어, 큰 제물에 이르러서는 갈기갈기 찢겨져있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축사의 소리를 하며, 일단 의식을 하고 산을 내려온 신주의 얼굴은 녹초가 되어있었습니다.


신사에 모셔진 신의 가호에 아랑곳하지 않는 부정한 생물이 산속에 있다.


혹은, 부정한 물건이 있다.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산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또 다른 괴이한 일이 마을로 닥치게 됩니다.


들개가 대량으로 온 마을에 나타났어요.


주민 몇 명이 들개에게 습격당하고, 집단 하교중에 습격당한 초등학생이 큰 부상을 입는 사태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원숭이나 멧돼지도 대량으로 마을로 내려와 농작물을 망쳤습니다.

야채가게의 야채도 마음대로 훔쳐 먹었습니다.

마치 산에 있는 모든 동물들이 온 마을로 내려온 것 같았어요.

실제로도 그대로, 산에 나타난 뭔가를 두려워한 야생동물들은 산에서 도망쳐 나왔고.

인근의 산으로 도망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 적응할 수 있는 동물은 마을로 식량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과거 유례없는 야생동물의 대량 발생은 전국 신문에도 다루어져 인근 관공서로부터도 협조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 몇 개월에 걸쳐 야생동물은 구제되어 갔지만, 괴이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름이 끝나가며 태풍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유례없을 정도의 대형 태풍이 마을을 직격.

태풍이 지나가고 불어난 강에서 부주의하게 놀고 있던 대학생 집단이 모두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당시 지진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해지던 큐슈를 덮친 큰 지진으로,

진원지에 가까웠던 우리 마을은 당연히 진도가 높았고,

태풍에 의한 큰 비로 지반이 느슨해져 있던 곳에,

최대 진도 5도의 흔들림으로 산사태가 발생해 몇 채의 민가가 떠내려가 몇 사람의 주민이 사망.


게다가 원인 불명의 고열에 의한 사망이나 불가해한 목매다는 자살이 연달아 발생.

봉오도리의 날 이후 마을을 습격한 재액은 멈추지 않고 맹위를 떨쳐,

규슈 전지역과 시고쿠의 신사나 절 등에서 신관과 승려가 파견되었습니다.


우리 신사에 모여든 각지의 신관들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들은 봉오도리때보다 더 열중했습니다.

인근의 숙소를 마련하여, 본전 이외의 시설에서 숙박할 수 있도록 간이 숙박시설을 마련하고,

그 밖에도 식사 준비와 회합때 차 시중 등 할 수 있는 일은 무수히 많았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형도 귀찮은 마음으로 돕고 있었지만,

점차 신관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게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져,

굳은 얼굴로 모인 신관들을 앞에 두고 신주와 시즈할머니가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쯤에는

여기가 최전방이라는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인사를 하는 신주의 표정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피로의 빛이 짙어 혹시나 어린 마음에 신주가 죽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츠키도 숙부인 신주의 초췌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우리가 신사에서 심부름을 도운 것도 사츠키가 친구였기에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신관들이 세그룹으로 나뉘어 삼교대로 하루종일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그 기도는 몇 달 동안 계속됩니다.

그 무렵 마을의 절에서는 스님에 의한 가지기도가, 천주교에서도 평일 밤에 특별미사가 거행되었습니다.

모두 원인 불명의 재앙에 두려움을 느끼고 신불에 매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기도가 진행되면서 자연재해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형태풍과 지진이 겹친 현상이었을 뿐이므로 지금은 우연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원인 불명의 고열과 목을 맨 사망자에 관해서는 분명 귀신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무거운 분위기에 잠겨 있었습니다.

경찰도 신문도 마을의 분위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마을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싫증이 났는지,

많은 보도 관계자가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기도의 효과로 자연재해는 멈췄다고 생각했지만, 원령에 대한 건에 대해서는 이때는 아직 아무도 몰랐습니다.

원령은 그 존재를, 사람들을 바들바들 떨게 만드는 두려움을 동반하며 세상에 드러낸 것입니다.


그 무렵부터 학교나 회사 등 마을 곳곳에 뒤따라오는 그림자를 봤다는 등의 괴담 같은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문득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면 길모퉁이에 그림자가 휙 하고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몇번이고 뒤돌아봤다.


아파트의 2층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면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더 오르지 않는다.

계단을 봐도 아무도 없다.


맑은 날인데도 멀리서 검은 우산을 쓰고 이쪽을 응시하는 인물이 있다.


심야에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물론 창문을 열어도 아무도 없다.


그런 흔한 괴담들이 일제히 동네에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도 이상한 그림자를 보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체험했다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 괴담들은 소문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적인 공포가 되어 거리를 불안으로 뒤덮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고열과 목매달음.

목을 매단 시체는 마침내 온 마을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심야의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마트 화장실에서, 야근하는 주재소에서, 밭 옆 헌간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도 가리지 않았으며,

사인도 고열이었거나 대동맥류 파열이었거나 목을 매단 질식이었거나,

무작위로 무차별적으로 목을 매단 시체가 온동네에 나타났습니다.


저 스스로도 대로변 교차로에 있는 신호등에 매달린 시체를 봤을 때, 내일은 제 몸이 매달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질렸습니다.


2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이런 사건은 불과 1개월정도 사이에 일어난 일로,

경찰도 관공서도, 성직자도, 대책다운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늘어가는 시체더미에 머리를 싸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그날 우리 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국기를 게양하는 장대 끝에, 매달린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매달려 있던 것은 젊은 남자 교사였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 등교했었습니다.

밖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러, 무슨일인가하고 밖을 본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교사의 눈 앞에 펼쳐진 교정.

전교회의 등에서 교장 선생님이 말하는 단 뒤에 서 있는 깃발을 내거는 기둥의 끝.

처음에는 무슨 천이라도 결쳐져 있는 줄 알았지만, 곧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첫번째 비명이 울릴때까지 아무도 모르고 모두 수업의 시작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경찰이 왔습니다.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교정을 보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그 말을 따르지 않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어요.

남녀불문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이 많아, 선생님들도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온학교가 발칵 뒤집힌 것처럼 아수라장이 되어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봤습니다.


새파란 가을 하늘에 떠있는 남자교사.


기둥에 매달린 그 시체가 파닥파닥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매달린 것이 발견된지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매달린 시체는 바람도 없는데 크게 손발을 휘둘렀고,

만약 살아있어서 밧줄을 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해도,

도저히 의지나 목적이 느껴지지 않는 엉터리 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무엇에 농락당하듯 매달린 시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남겨진 광경에 경찰도 선생님들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신을 치우기 위해 사다리를 걸었지만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저런 상태의 시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신주가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계속 날뛰던 시체를 바라보던 우리는 이제 동요조차 잊고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전혀 현실감이 없는 그 광경은 이상하리만치 맑게 갠 바깥 경치에 녹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체는 목뼈 등이 이미 부러져, 목이 완전히 늘어져 있어,

마치 도마뱀 같은, 인간이 아닌 실루엣이 되었지만 아직 계속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목에 파고든 밧줄이 피부와 살을 도려내고 시체에서 쏟아진 피가 땅을 시커멓게 더럽혔어요.

신주도 멍하니 쳐다보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축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그러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체가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덜렁 매달린채로 움직이지 않게 되어, 기도가 들었나 생각했던 차에,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시신의 목이 떨어져 나가며 몸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목부터 위까지 떨어졌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지면에 떨어진 시체가 다시 움직이지 않을까하는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곧 신주가 다시 기도를 드렸고 기도가 끝난 후에야 시체에 다가갔습니다.

경찰이 사진을 찍은 후 시체위에 파란 시트가 덮였어요.


이상한 광경이 덮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건 우리만이 아니었던지, 교장 선생님의 교내 방송이 진행되었습니다.

매우 충격적인 일이 있었고,

이제 가족이 데리러 올 테니, 모두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릴 것.

무서운 것은 당연하지만 신주가 오셨기에 이제 괜찮다.

담임선생님이 교실마다 가실 테니 지시에 따르도록.

등의 안내가 전해지고, 교내 방송이 끝났습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다시 스피커에서 바로 전자음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교장선생님이 전하지 않은 것이라도 있나 생각했지만, 들려온것은 이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무서운 목소리였습니다.

“우우우웅으으우응우ㅜ우우”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으으으응….으…응…”

“오오오오오아아아아”

신음소리 같이 낮은 목소리가 여러변 겹쳐 들려오고 있습니다.

소리의 주인공은 한둘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괴로운듯 신음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싫어어어!!”

하고 여학생 중 한명이 귀를 막으며 소리쳤습니다.

“뭔데!!!”

반광란하여 울부짖는 여학생.


그 목소리에 이끌려 모두가 일제히 소리를 질렀어요.


“우와아아아아!”

“어이 이거… 뭔데….”

“무서워! 무서워어어어어!!”

“선생님--! 선생님--!!!”

“이제 그만둬요오오오오!!!”


마치 아비규환의 교내.


복도로 뛰쳐나온 학생도 많이 있어서 복도에서도 울음소리나 고함소리가 들려옵니다.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혔어요.

모두 겁에 질려 광란상태였습니다.

스피커에서는 아직도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도 너무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요.

구원을 청하며 교정의 신주에게 눈을 돌리니 필사적으로 제례용 지팡이를 흔들며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교실로 뛰어들어왔습니다.

모두 괜찮니!하며 고함쳐 근처의 학생의 어깨를 두드리거나 머리를 어루만지거나 하고 있습니다.

교실의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밀려들었습니다.

몇 분 후 신음소리는 사라졌지만, 신음소리가 들리는 동안,

선생님은 계속 큰 소리로 모두의 이름을 부르며,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신음소리가 저희에게 들리지 않도록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제 머리를 쓰다듬어 조금 진정됐습니다.

“고바야시, 괜찮니?”

선생님께서 제 옆으로도 와주셨습니다.

저는 예하고 선생님과 한두마디를 나누고 다시 교정에 있는 신주를 보았습니다.


잠시 기도가 계속된 후, 교정에 눈에 익은 신사의 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신주 쪽에 정차하자 운전석에서 신관이 나와 뒷자석의 문을 열었습니다.

안에서는 신관 의상을 입은 시즈할머니가 내려왔습니다.

그 뒤에 사츠키도 이어 내려옵니다.

저는 사츠키를 본 순간, 무의식중에 벌떡 일어나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고바야시!라고 선생님이 부른 것이 들렸습니다만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가, 입구에서 신발을 갈아신는 것도 갑갑해 실내화를 신은 채 교정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목표는 사츠키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그 무서운 시체가 파란 시트 아래에서 아직 움직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래도 온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사츠키에게 달려가는 저를 발견한 사츠키가 소리쳤습니다.

“케이! 다행이야!”

사츠키도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마주 멈춰서서 사츠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케이, 무서웠지. 괜찮아?”

사츠키는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눈물로 흐릿한 눈으로 사츠키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다가갔습니다.

사츠키는 손을 뻗어 저를 안아 주었어요.

부드럽게 사츠키의 향기에 휩싸인 저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기 흉하게 사츠키에게 매달려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사츠키, 케이타를 데리고 떨어져있어.”

시즈할머니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평소의 낯익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라, 저는 현실로 되돌아왔습니다.

아직 사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사츠키를 만나 안심했지만, 아직 시체는 시트 아래 있고, 조금 전의 무서운 소리도 생생히 귀에 남아있었습니다.

신주와 시즈할머니, 그리고 2명의 신관이 시트를 둘러싸듯 서서 경찰에게 신호를 보내 시트를 제거합니다.


거기에는 낙하의 충격으로 있을수 없는 형태로 손발이 휘어진 피투성이의 남자 교사의 몸과,

신주를 노려보는 머리가 있었습니다.

지면을 구른 채 신주를 노려보는 머리는 핏발선 눈을 드러내고 입이 맥없이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알 수 있는, 분노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는 표정으로 신주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물론 죽었기 때문에 그 눈은 신주를 향해 있지는 않았지만,

얼굴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시선으로 신주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한 건데, 시체가 떨어져 파란색 시트가 덮이기 전 경찰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얼굴은 보통의 무표정이었다고 합니다.


신주가 끔찍한 모습의 시체를 앞에 두고 축사를 올립니다.

시즈할머니와 신관들도 꼼짝않고 기도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기도가 끝나고 남자교사의 몸과 목은 바디백에 넣어져 구급차에 실려갔습니다.

신주는 시신을 따라 구급차에 올랐고, 시즈할머니와 신관들은 남아 학교에서 액막이를 했습니다.

피로 얼룩진 교정에 집합할 수는 없기에 체육관에 전교생이 모여 단상에서 기도를 드리는 시즈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머지않아 학부모들이 속속 학교에 도착해 체육관에 들어왔습니다.

부모와 재회한 학생들은 모두 울면서 안기며 귀가했습니다.

저도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는 안도감에 울 뻔했지만, 이미 사츠키의 품을 빌려 펑펑 운 뒤여서 간신히 눈물을 참았습니다.

그 날부터 학교는 잠시 휴교에 들어갔어요.

남자교사의 죽음은 물론,

원인이 불가해하다고 알려진 이상,

학생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통신문을 통해 전해진 학교 측의 설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무서운 소리를 들은 학생 대부분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측이 결단하지 않았어도 곧 학급 폐쇄 등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형도 사츠키도 학교가 있기 때문에 놀 상대가 없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도 그다지 적극적으로 놀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신사에 가서 시즈 할머니와 보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시즈 할머니는 거의 매일 찾아오는 신자들의 상담 상대를 해주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인가.

항상 그런 질문을 받으니까 시즈 할머니도 약간 피곤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평상시처럼 지내게. 안 좋은게 이 마을에 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에 지면 안 돼.

이 마을을 떠난다고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비록 도망가더라도 그것은 쫓아간다.

뭐 그런거지, 그러니 이 동네에 머물며 해결을 기다리게.”

시즈 할머니는 그렇게 신자들을 격려했어요.

당신들이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시즈할머니에게는 뭔가 해결책이 있을거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시즈 할머니, 안 좋은거라뇨?”

“케이타야, 너에게 이런 이야기는 아직 이르단다. 할머니들에게 다 맡기렴.”

“응. 그런데 나도 학교에서 목소리 들었는데?”

저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무서운 신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생각하면 몸이 떨려올 정도로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그것에게 노려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그것이 원망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 마을 자체니까.

너 하나만을 노리는게 아니란다.”

마을 자체가 표적이라면 저자신도 표적이었지만,

시즈 할머니의 수수께끼 같은 설명에 그때 저는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몇번이고 시즈할머니에게 원령이나 괴이함에 대해 물었습니다.

시즈 할머니는 둘러대시거나,

얼버무리거나,

가능한한 저를 불안하게 하지 않도록 고심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죽은 남자 교사의 목 매단 모습을 보았을 때

시즈할머니는 원령의 모습을 보고 영시하고 있었습니다.

시즈할머니가 말해주신 내용에 따르면,

남자교사의 매달린 모습을 보았을때,

이 일련의 괴이한 일들의 원인이 하나의 원령임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터무니없는 원한을 머금은 악의의 집합체.

자연재해조차 쉽게 일으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원념의 힘을 느꼈다고 해요.

“귀신이 자연재해 같은 걸 만들 수 있어?”

“아아, 그렇지. 원령이라고 하는 것은 때로 엄청난 힘을 가지지.

옛-날 옛날 이야기지만 말이야.”


호기심 때문에 나중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일본의 역사속에서는,

원령에 의한 국가 규모의 위기가 몇번이나 일어났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 3대 원령이라고 불리는 원령이 일으킨 액재는 매우 화려한 것이 많아,

조사하면서 조심성 없게도 두근거려 버린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 마을을 휩쓴 그 원령은, 일본 삼대 원령 못지 않은 엄청난 원념을 갖고 있다고.


초등학교에서 흘러나온 무시무시한 소리는 이후에도 여러 번 우리 마을에서 주민들을 떨게 합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시설에서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데,

그 중에는 전화로 직접 걸려온 사람이나,

뒤에서 신음소리가 따라오는 것을 듣고 달려서 도망친 사람도 있었고,

이미 원령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져 단풍이 산을 물들일 무렵, 신사에 여러 스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날도 저와 형은 신사에서 사츠키와 시즈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우리 형제는 집에 있는 것보다 신사에 있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스님들은 장삼을 입고 머리에 삿갓을 쓴 차림으로 손에는 석장을 들고 있었어요.

신주가 맞이하여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시즈 할머니도 함께 본전으로 모셔졌습니다.

우리는 밖에서 엳듣고 있었어요.

잠시 이야기가 계속되다가 웬일인지 제가 불렸어요.

저와 형 그리고 사츠키도 본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고바야시 케이타입니다, 라고 인사했습니다.

스님들이 의아한 듯 형과 사츠키를 보고 있었어요.

신주님이 사츠키와 형에게 ‘너희들은 나가 있어라.’고 하였으나 사츠키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케이는 우리가 지킬거야.”

라 말하며 제 손을 잡았습니다.

저는 부끄러웠지만 기쁘기도 해서, 그대로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스님중 가장 고령으로 보이는 인물이 피식 웃으며 ‘상관 없어요. 앉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나이 지긋한 주지스님은 이 마을 절의 정리역 같은 사람으로 신주와도 잘 아는 사이 같았어요.

주지스님은 제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말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신주님이나 시즈할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등교한 후부터 시신이 발견되기까지의 일이나,

신주가 온 후부터 그 소리가 들리고,

시즈 할머니들이 온 뒤로 어떻게 됐는지 최대한 명확하게 얘기했습니다.

형이나 사츠키에게도 이미 같은 말을 하고 있어 놀라는 기색도 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스님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때때로 끙하고 신음하기도 했습니다.

대충 이야기를 마치자, 주지스님은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무서웠지’라고 했어요.

“네. 그래도 신주님과 모두가 와주셨기 때문에…”

신주, 시즈할머니, 사츠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주지스님은 끄덕끄덕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아픈 아이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케이타군은 괜찮니?”

제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자,

“아무렇지 않다고? 그거 참 잘됐구나.”

주지스님은 끄덕끄덕 자꾸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딘지 모르게 어투도 조금씩 바뀌어 갔고,

주지스님은 사실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질의응답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영의 목소리는 몇 명 정도였다던가.

남자교사의 시체가 걸려있는 것을 최초로 발견한 것은 누구인가.

그 외에 또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았는가.

그런 것을 물어보셨던 것 같습니다.

모두 신주나 시즈 할머니가 묻는 것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이야, 잘 알겠다. 케이타, 무서운 것 생각나게 해서 미안하구나.”

주지스님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괜찮아요, 그때부터 계속 무서운걸요.

그리고 학교에서 이미 일어난 일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무서워요.”

주지스님은 후-하고 한숨을 내쉬고 다시 앉았어요.

“맞아, 그렇다.”

끄덕끄덕했습니다.

“그래서요 시노미야님.”

주지스님이 신주에게 얼굴을 돌립니다.

“그쪽도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쪽에도 많은 상담과 제령 요청이 들어옵니다.”

주지가 몇번째인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의 일로 적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령을 적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연속 살인 뿐만이 아니라 사체를 더럽혀 위압하거나,

스피커로부터 목소리 같은 것을 들려 아이를 겁먹게 하거나 하는 성가신 녀석이에요.

솔직히 내가 알기로는 최악이죠.”

“동감입니다. 정말로 곤란해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친듯 헌숨을 쉬는 신주.

“시노미야님, 이 마을에서는 이쪽 신사가 가장 오래됐습니다.

뭔가 옛 문헌 같은 것이 남아있습니까?”

“주지스님이 언젠가 경찰과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뇨. 저도 다 조사했지만 원령의 종류에 관한 문헌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원래 이동네는 오래전부터 귀신을 거슬리게 했던 것과는 무관했던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이런, 단서조차 없군요.”

주지가 천장에 얼굴을 향하며 흠-하고 신음했습니다.

“단서라고 할정도는 아니지만 말이지.”

그때 조용히 시즈할머니가 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학교에서 영시한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일련의 재앙은 모두 한 원령의 짓이구나.”

천천히 주변에 또렷이 들리게.

“지진이고 폭우고, 목매다는것도 심장발직이고 모두 그 귀신이 혼자 한 짓이야.”

“그 원령의 정체를 아시겠습니까?”

바로 주지스님이 끼어들었습니다.

“정체는 알 수 없네. 그런게 있는지 모르겠구만. 수많은 인간들의 원망이 모여 하나가 되었네.”

129, 하고 시즈 할머니가 말했어요.

“많은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야 129라는 숫자가 보였네. 아마 많아도 129명의 혼이 모여있어.”

“그렇게나…”

말문이 막힌 스님들.

신주는 미리 듣고 있었는지 어려운 얼굴로 조용히 있었습니다.

100명이 넘는 영혼이 모인 원령.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흠… 그렇게 되면….

마을이 통째로 원령에 먹혔는지, 모종의 주술적 집단이었거나,

아니면 더 오래된 종교적 단체였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주지스님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네. 다만 원념의 강도는 대단한 것이지.”

자연재해조차 쉽다던게 생각났어요.

“태풍이나 지진은 시작의 하나라고 생각되네. 본디부터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계산하고 이 동네에 왔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를 이용해 재난을 만들었다.

뭐든지 너무 많은 것들이라 갑자기 믿기지는 않았습니다.

“못쓰게 된 신, 이라고 말하는 편이 전해지기 쉬울지도 모르지. 그만큼 그것은 원한이 강하네.”

마치 신과 같은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원령이 하다니, 무섭다 이외에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어떤 두려움 같은 감정마저 일었습니다.

그런 강대한 존재에 대항할 방법이 없어보였습니다.

“신이라면 진이나 봉, 야성이라도 만들어 모시면 좋겠지만 그것과는 달라.”

시즈할머니는 머리를 흔들며 분명하게 말했어요.

“이 마을의 멸망을 원한다.

거꾸로 말하면 이 동네를 망치면 사라진다, 그건 그런거야.”

"........."

주지스님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개인을 저주하는 게 아니네.

원망하는 마음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대화도 진혼도 무리야.

악착같이 쫓아버리는 수밖에 없다네.”

그렇게 말한 채 시즈할머니는 침묵했습니다.

시즈할머니가 말을 마쳤을 때 주지스님이 어이없어하며 말했어요.

“이야, 굉장하네요… 과연 시노미야 신사의 신부라 불릴만합니다. 시신에서 거기까지 읽어내다니.”

저희도 충분히 두렵고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정체불명의 괴이가,

수많은 인간의 영혼이 모여든 원령이라는걸 알고도 대처방법을 몰라 진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지스님은 그래도 수확이 있었다고 납득한 것 같았습니다.

“시즈할머님,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뭐든 말씀해주세요.”

그러면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시즈할머니가 주지스님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왠지 자랑스러워 자리를 뜨면서 미소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시노미야씨.”

주지스님이 다시 신주에게 이야기를 돌립니다.

목소리 톤이 차분하게 느껴졌어요.

신주도 ‘네’라고 대답하고 얼굴을 향합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적이 터무니없는 괴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만. 재해가 일어나진 않지만,

여기저기서 목이 매달리니 사람들이 불안해 죽을 지경이에요.”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신주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와함께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한 신음소리의 사건.

처음엔 소문으로, 그리고 서서히 그림자가 목격되더니, 이번엔 소리입니다.”

주지의 말투가 한층 빨라졌습니다.

“적이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후, 주지스님은 일단 말을 끊고 다시 앉았습니다.


원령이 다가오고 있다.

어제까지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뒤를 타닥타닥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


그런 불안이 무겁게 덮쳐왔습니다.

뚜렷한 공포 이외, 막연히 느꼈던 불안감.

그것이 주지스님의 말로 형태를 이루고, 학교에서의 체험과 겹쳐 마침내 공포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츠키가 괜찮으니까, 그런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두려울텐데, 나이 어린 나를 염려하는 여느때와 같은 사츠키에 안심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용기를 얻은 저는 사츠키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계속하는 주지스님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서로의 입장이나 교의를 존중하며 잘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주도 막힘없이 대답했습니다.

“일이 이지경에 이른 이상 우리도 일치단결하여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사이를 두고 주지스님이 제안하셨습니다.

“시노미야씨, 이쯤에서 시노미야 신사와 우리가 공동성명이라도 낼 수 없을까요. 교회와도 함께말입니다.”

신주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셨습니다.


5화

주지의 제안은 빈발하는 괴이함과 그 공포에 질린 주민에 대한 대응으로서,

지역의 각 종교지도자가 연명으로 성명을 내고,

주민들을 안심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합동으로 어떤 집회를 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확실히 이렇게까지 뚜렷이 괴이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스님들이 구체적인 대책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신주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겠다든가 하지 않겠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우리 신사의 생각으로는 악령을 물리친다는 적극적인 의식은 없거든요.

우리가 액막이하는 것은 재앙이나 더러운 것일뿐이니,

신사의 액막이라는 것은 절이하는 제령처럼 악령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장소를 깨끗이하고 올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신과 인간을 맺어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니까요.”

뭐, 시즈할머니 같은 분은 어느정도는 확 해치워 버릴지도 모릅니다만, 라고 웃으며 신주가 말은 계속됩니다.

저는 신사에는 제령이 없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아서, 조금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빠릅니다.”

주지스님이 약간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계속 말했습니다.

“이번에 저희쪽에서 악령퇴치의 대법회를 거행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시노미야님도 가능하면 동석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주민들 모두는 우리가 일치단결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면 아무 문제 없어요.”

“고맙습니다. 교회에도 말씀은 해보겠지만 저쪽분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신주가 동의를 표한것으로, 그 후 대법회의 협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의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언가 지루한 이야기가 오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없는 부분은 후에 조사한 내용입니다.

주지스님들이 신사를 찾은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시노미야 신사 신주 시노미야 소우코

◯◯종묘련사 주지 오오하사마 이치젠

성 안드레아 천주교회 교구 사제 토마스 야나기다 준토쿠

이 세명의 연명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이례적인 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공동성명의 내용은 신불을 믿고 마음을 단단히 가질것,

불안이 있으면 믿고 있는 종교의 지도자를 의지할 것,

괴이함에 대해서 지역에서 단결해 총력을 기울여 대응할 것이니,

부디 안심해주었으면 하는 등의 내용으로,

회람판이나 신문의 삽입 등으로 마을 전역에 배포되었습니다.

신불조화 등 일본인에게 친화성 있는 신도와 불교라면 몰라도,

뭣하면 타종교를 눈엣가시로 여길 것 같은 기독교의 신부가 연명에 참가한 것은 의외의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해야할 정도로 우리 마을은 이상현상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짙어지는 괴이의 그림자.

멎지 않는 목매닮.

불가해한 신음소리.

주민들의 불안감은 폭발 직전이었습니다.

가톨릭만 나몰라라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성명을 발표한 후 며칠 동안 신사의 전화는 쉴새없이 울렸습니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상담 전화.

때때로 걸어도 걸어도 통화중이라는 불만도 있었습니다.


전화만으로는 너무 효율이 나쁘다고 해서, 주민들을 불러 상담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신사 본당에 모두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초등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실시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내려 쌀쌀한 날이었습니다.

이 무렵에는 초등학교도 재개했기 때문에 토요일 낮에 상담회가 열렸습니다.

그날도 우리는 차심부름, 의자 준비 등으로 바빴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초등학교에 모여

신관들이나 휴일 출근을 하는 선생님들 틈에 끼어 저도 형도 사츠키도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신사의 도령 같은 형제였습니다.

뭐 형이나 물론 저도 사츠키가 목적이었으므로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만.


서서히 거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체육관의 절반 정도가 차버리게 되었습니다.

주민 앞에 나란히 앉은 신주와 시즈 할머니.

긴 책상 위에 자료와 마이크가 놓여있었습니다.

예정된 시각이 되어 신주께서 마이크를 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상담회는 험악해지는 일 없이 담담하게 진행되어 갔습니다.


주민의 상담 내용은 신사를 방문한 사람들이 시즈할머니에게 하고 있던 것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부분 그것 뿐이었습니다.

그것들에 대해 신주가 대답해가는 형태였습니다.


일련의 괴이한 현상은 어떤 원령에 의한 것이라는 점.

그것은 강력하지만, 불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

마을을 나가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세심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그자리에서 한 남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50대 중반의 날렵한 체격을 가진 남성으로, 소네자키씨라고 합니다.

소네자키씨는 책자 한권을 꺼냈습니다.

구마모토에 있는 그의 집에 오래된 곳간에서 오래 전 청소를 하다가 발견한 고문서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책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지만,

일련의 괴이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마모토까지 가지러가서 그것을 오늘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진작에 누군가에게 말했으면 좋았겠지만, 내용이 내용인만큼 내키지 않아 방치했다고 합니다.

‘◯◯촌 기록’

그건 우리 동네의 옛 이름이 적힌 고문서였어요.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는, 신주조차 처음보는 고문서였다고 합니다.

판독하기 힘들지만 제대로 내용을 읽을 수 있는 그 고문서에는

우리 마을이 아직 아직 여기저기 흩어진 촌이었을 때의 생각지도 못한 처참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문헌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은 인근의 한 마을과 역사적인 갈등을 겪었고,

결과적으로 그 마을을 궤멸시켰다고 합니다.

오늘날 차별받는 부락

(일본에서 차별받고 소외되어 있던 근세로부터의 천민신분으로 주로 천업에 종사하는 사람,

죄인들의 집단주거지를 일컫는 말),

당시는 좀더 모멸적인 호칭이었다고 하는데,

그 마을을 덮쳐 여자이에 이르기까지 몰살했다고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후에 소실되어 더 이상 그 고문서를 볼 수 없으나,

‘말굽으로 배를 짓이기는 것’

‘사지를 박살낸 후 아직 숨이 붙어있는 상태로 집에 보낸다 다음 불을 질러 타 죽게함’

‘아이들의 다리를 잡아올려 땅에다 내려쳐서 죽이는 방법은 잔혹한 악귀 나찰이 하는 짓이다’

‘우리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략적인 내용을 소네자키 씨가 읽어 내려갔을 때, 모인 거주자 중 1명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럼 그것에 대한 저주라고? 그래서 지금와서 이렇게 사람이 죽었단 말이냐?”

남성은 소네자키씨에게 대들듯이 언성을 높였습니다.

소네자키씨는 남성을 제지하듯 양손을 들어올렸습니다.

“모릅니다. 그래서 신주님께 부탁드리려고 가져왔어요.”

“그 책이 확실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어!”

남자는 꽤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것도 포함해 신주님께 맡기려고요.”

소네자키씨는 신주 앞의 긴 책상 위에 고문서를 탁 내던졌습니다.

“드려야죠, 여기”

그렇게 말하며 고문서를 가리키고 나서 더이상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두손을 앞으로 들어보이고는 그대로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남자가 일어서서 뭐라고 했지만, 신주가 마이크를 들고 일어섰기 때문에 다시 착석했습니다.

“어쨌든 이 문서가 어떤 것인지는 차후 알아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질문을 계속 받고 싶습니다.”

신주의 말에 질의응답이 재개 되었습니다.

비슷한 상담회는 주지스님들의 절에서도 했다고 합니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시노미야 신사보다 많은 시주인을 거느린

주지스님들의 상담회는 분위기가 어느정도 난폭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2월을 코앞에 둔 화창한 토요일, 주지스님의 절인 묘련사에서 원령을 쫓기 위한 대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각지에서 응원을 온 힘있는 스님들이 묘련사에 모여

호마(불을 피우며 그 불 속에 공양물을 던져 넣어 태우는 의식.

불을 하늘의 입이라 생각하여 불에 공양물을 던지면

하늘이 이를 먹고 사람에게 복을 준다는 생각에서 유래하였다.)를 태우며 독경을 합니다.

참가한 시노미야 신사 일행은 독경에는 가담하지 않지만 묘련사 본당 한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신주와 시즈할머니, 신관 몇 명과 사츠키,

사츠키와 언제나 함께인 우리 형제,

시노미야 일족 대표자 몇 명도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에서 행하는 기도와 달리,

호마를 모시고 하는 집단에서의 독경은 무너가 박력이 대단하여 압도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천장까지 치솟는 불길의 열은 불당 구석에 있는 우리까지 열을 느낄 정도였죠.

불길 바로 앞에 있는 주지스님들에게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아직까지도 생각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좌선을 하고 앉아 있었는데, 무릎과 허리가 아파서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스님들은 바른 자세로 독경을 계속하고 있었죠.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들의 독경 소리와 종 같은 것을 치는 기도소리에 이질적인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아요.

한동안은 단순한 위화감 밖에 느끼지 못했지만, 점차 크고 명확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신음소리입니다.

“으으….으….으어어…으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그…으… 기.. 기긱….”

아주 불쾌한, 고통을 참아내는 듯,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였습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들은 것보다 생생하게 들려서 어디서인지는 모르지만 당안에서 퍼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우으으으으…우…아…아으으으….”

그 소리가 눈앞에서 들렸을때는 앉은 채로 뛰어올랐습니다.

저만이 아닙니다.

사츠키도 형도 신주조차도 갑작스런 신음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심장이 잡힌 것처럼 멈춘 기분이 들었어요.

땀이 솟구쳤습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눈앞의 신음소리는 기세를 더해갑니다.

고통의 신음이 아니라 분노의 신음으로도 들렸습니다.

비유가 아닌 정말 코앞에서 들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냄새도 풍겨왔습니다.

당내를 감싸고 있는 향을 피운 냄새와는 다른, 썩은 물 과 같은 시궁창의 오물 같은 비린내입니다.

그리고 시선.

바로 근처에 있는것처럼 그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코앞에 얼굴이 있고 지근거리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그만큼 강렬하게 느껴지는 또렷한 시선.

분명히 눈앞에 얼굴이 있는데 보이지 않아.

그런 불가해하고 불가사의한 무서운 압박감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마 보이지 않았을 뿐이고, 그자리에 그것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히이~하고 소리를 지르며 시노미야 일족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도망쳤습니다.

엉키는 발로 쿵쿵거리며 당 밖으로 나가고자 활짝 열린 입구를 향해 나아갑니다.

“나가지마!”

누군가의 노성이 들렸습니다만 그 사람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안에서는 독경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스님 몇분이 그 사람을 따라나갔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의 신음소리는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강렬한 압박감도 사라졌습니다.

도망친 사람을 찾아봤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신주도 마찬가지여서, 일어나서 입구쪽으로 향했습니다.

좀 전의 “나오지마!”라는 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입구를 통해 밖을 살피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저희쪽에서 찾을 테니 앉으시죠.”

근처에 있던 스님이 신주께 말했어요.

재촉을 받아 우리 곁으로 돌아온 신주님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표정이었어요.


조금 뒤, 느닷없이 주지스님들이 경을 외는 속도가 느려져서 독경이 끝났습니다.

그러고는 모두 숨을 돌릴 때에 밖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스님이 뛰쳐나가는 것이 보였어요.

우리도 일어서서 밖을 보니 시노미야 가문 사람이 바닥에 뒹굴며 날뛰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아무도 없는 절의 경내는 넓고 한산했습니다.

그 경내의 한가운데, 우리로부터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 사람이 몸부림치고 있는것처럼 보였습니다.

차근차근 살펴보니 그 사람 주위에 몇 개의 그림자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니 개인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들개에게 습격당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불당에서 뛰쳐나와 그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앞서 달려간 스님은 이제 쓰러져있는 곁까지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달려갔을때, 그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어 들개와 격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기 보다 필사적으로 들개에게 저항하고 있는 것 뿐이었습니다.

달려온 스님이 열심히 들개를 걷어차고 있는데, 다섯마리의 들개는 그 사람만을 노리고 달려들더군요.

신주도 형도 들개떼에 뛰어들어 발로 찼어요.

저와 사츠키는 그 사람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 사람은 양손이 피투성이인데다 몸에도 얼굴에도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감싸듯이 들개에게 얼굴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쪽으로 오는 들개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때, 들개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갑자기 여자 영의 모습으로 바뀌었어요.


그 여자는 엎드린 상태로 핏기 없는 얼굴에 긴 검은 머리가 휘감겨 미친 듯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 무시무시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눈은 이미 저밖에 보지 않았고 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여자를 마주보고 엉덩방아를 찧는 듯한 자세가 되었습니다.

뒤로 물러서려고 하는데 도망쳤던 그 삶이 방해가 되어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이때 사츠키의 외침소리도, 형들이 들개를 헤집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거의 무음에 가까운 가운데 여자의 신음소리와 사각사각 모래를 문지르며 다가오는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 여자의 얼굴을 짓밟듯이 발로 찼습니다.

꾸부덩 살을 찬 불쾌한 감촉을 신발 바닥에 느꼈습니다.

여자는 발로 차는 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기어올라왔습니다.

여자가 손을 뻗어 제 발목을 잡았어요.

엄청난 힘으로 다리를 잡혀서 저는 으악 소리를 질렀어요.

그대로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옷을 잡고 나를 끌어당기듯 여자가 끌어당깁니다.

“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배 근처까지 여자의 얼굴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으와아아아아!!!!:

저는 필사적으로 악을쓰며 여자에게서 멀어지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힘은 강하게 제 허리를 꽉 껴안고 있었습니다.

저는 발을 동동 구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고,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아아아아!!!! 히이이아아아아아ㅏ!!!!”

무아지경으로 날뛰었습니다.

여자의 얼굴을 양손으로 후려쳤어요.

“아아아…..아…아…우우우으으으으….”

여자는 개의치 않고 다가왔습니다.

눈앞에 다가온 여자의 새하얀 얼굴 중 유일하게 새빯갛게 핏발이 선 눈이 저를 응시하고 있었어요.

그때, 옆에서 신주가 여자를 걷어찼습니다.

끙하고 울며 들개가 옆으로 굴러갔습니다.

갑자기 주위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자의 존재감은 사라졌고 그 신음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들개들은 체념한듯 도망쳐갑니다.

뒤에서는 사츠키가 일족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의식을 잃은 듯 축 늘어져있었습니다.

나중에 모두에게 들은 얘기로는 저는 시노미야 가문 사람에게 달려간후

들개를 보고 기겁을 하며 멍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 저는 땀을 흠뻑 흘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엇습니다.

모두들 그런 내 모습에 이상한 기색을 보였지만 곧 많은 사람들이 달려와,

시노미야 가문 사람이 본당으로 실려갔습니다.

우리도 걸어서 본당으로 돌아갈 때 저는 절뚝거리고 있었습니다.

잡힌 발목이 욱신거렸어요.

당내로 돌아와 앞자리에 앉아 바지를 걷고 발목을 보니 여자의 손자국이 남아있었습니다.

아아, 역시인가 싶어 신주님께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전했습니다.

모두가 제 다리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어요.

“홀렸군…”

하고 주지스님이 말했습니다.


곧 그자리에서 저를 위한 액막이가 진행됐어요.

방금처럼 독경을 하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호마를 피우지 않고 대신 제 머리와 등이 쾅쾅 두드려졌습니다.

기도가 끝나도 발목에 묻은 손 모양의 멍은 사라지지 않았고 통증도 남아있는 채였습니다.


구급차가 와서 쓰러진 사람을 데려갈 때 저도 동승하도록 하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신사 사람들은 차로 병원까지 온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들개 떼에게 습격 당했지?”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이 물었습니다.

네라고 대답했더니 “너도?”라고 물어서 제가 물지는 않았지만 다리를 삔 것 같다고 설명했어요.

병원에 도착해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피투성이인 가문 사람은 응급의료로, 저는 토요일 오후 일반 진료로 돌려졌습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신관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사츠키와 형도 같이였습니다.

시즈할머니와 신관님들은 대법회에 남은 것 같았습니다.

제 차례가 와서 진찰실로 보내졌습니다.

신주님과 함께였습니다.

바지를 걷어 올리자 의사는 “우와”했어요.

그리고 선명한 손 모양의 멍을 보고,

“뭐야 이거?”

라고 말했습니다.

신주가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 동안 그 의사 요네즈 선생님은 머리를 긁거나 팔짱을 끼거나 하면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꽤 생략된 설명으로, 하지만 그래도 꽤 긴 이야기를 대부분 다 들은 요네즈 선생님은,

“귀신을 거슬린걸까요?”

하고 신주에게 물었습니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네즈 선생님은 또 흠하고 신음했습니다.

“확실히, 염증이라든가 내출혈인 것 같기도 한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에요. 일반적인 타박상이나 염좌가 아닙니다.”

요네즈 선생님은 진료 기록 카드에 무슨 일인지 기입하고 나서 이쪽으로 돌아왔습니다.

“뭐 우리로서는 일단 지켜보아야 할 것 같네요. 이런건 신주님이 더 잘 아실테니까. 일단 파스를 드릴게요.”

이것으로 저의 진찰은 끝났습니다.



6화


그 날, 대법회에 참석했던 여러 스님이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최초에 뛰쳐나가는 사람이 발생했을 때, 뒤쫓아간 스님들이었어요.

다음날이 되어 주지스님이 신주님께 전화를 걸어와, 이 쪽도 주의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도망쳤던 분과 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아요.

그 분은 며칠 후 퇴원했지만, 집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마 그 사람도 보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 여자의 영을.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들개의 수만큼 영혼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5인의 악령에게 괴롭혀 죽임당할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상하고 나는 마음이 꺾여버렸습니다.

이제 두번 다시 그것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저항도 못하고 공포에 질려 울부짖다가 죽는, 그런 생각을 하면 떨렸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떨면서 펑펑 울고 있는 저를 본 어머니는 곧 신주에게 삼담해주셨습니다.

그결과 저는 잠시동안 신사에서 숙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주님이나 시즈할머니가 기도해 주기도 하고, 배운 축사를 스스로 외우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동안 사츠키나 가족과의 접촉도 끊고 오로지 기도와 수행입니다.

폭포수를 맞기 위해 산에 들어갈 때는 여러명의 신관들이 동행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본당의 툇마루에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때의 무서운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법회 날, 절 경내에서 여자의 영혼에게 붙잡혀, 하마터면 살해당할 뻔한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이상하게도 몸이 떨려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무섭다고는 생각했습니다만, 그 두려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두려움을 극복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었기 때문에 막연한 느낌이었지만, 안심하는 마음을 얻었다,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때 웬일인지 본당쪽에서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아, 신께서 보고 계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신상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그 후도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툇마루에 앉아 잠깐 있었더니, 맹렬한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본당 한복판에 정좌해 있었습니다.

신상쪽을 향해 혼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케이타.”

뒤에서 말을 걸어 돌아보니 본당 입구에 사람의 그림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뒤에서 햇빛이 비치고 있어서 그 인물은 그림자가 되어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신주님처럼 생겼는데 군데군데 붉은 색이나 초록색 자수무늬가 장식되어 있어 신주님보다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 실루엣을 보았을 때, 단발머리를 하고 있기에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잘 보면 확실히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케이타.”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선 채 다시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목소리의 느낌으로 보아 형과 같은 나이대의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내 뒷 수습을 너희에게 맡기겠다. 괜찮겠나?”

정신을 차려보니 그 사람은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갸름한 얼굴의 남자로 역시 형과 동갑 정도의 청년이었습니다.

무표정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은 그 인물에게 저는 다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츠키는 가엽단다. 네가 받쳐줘야해.”

그렇게 말하며 그 사람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무엇인가 속삭였습니다.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눈을 뜨니 저는 툇마루에 큰 대자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날 밤 신주님께 그 사실을 알렸더니 이제 집에 돌아가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다리에 멍은 가시지 않았지만, 통증은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신주님과 할머니께 인사하고,

학교에 등교하는 사츠키와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기다려 주셨어요.

어머니는 그날 일을 쉬고 하루종일 조부모님과 함께 저와 이야기를 하며 보내셨습니다.

마을을 뒤덮은 괴이의 그림자는 희미해지지 않고 마을의 분위기를 어둡게 가라앉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이상하게도 맑은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12월을 맞아 생활이 다소 바빠지기 시작했을 무렵, 시노미야 신사에서 액막이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시즈할머니께서 의식을 주관하여 저를 정화하는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다리의 멍은 사라지지 않았고, 대법회날 뛰쳐나갔던 분은 1주일 전에 목을 매어 사망했습니다.

신주가 아닌 시즈할머니가 주관하게 된 것은,

신주가 장례에서 일손이 부족했던 것과 자신이 실시하는 것보다,

영감이 있으신 할머니가 적임이라고 직접 그 자리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묘련사의 주지와 승려들이 액막의 의식에 게스트로 참석하였습니다.

먼저 사츠키가 카구라를 추었습니다.

원래라면 굳이 카구라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지만, 사츠키가 신께 저를 부탁하고 싶다며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제구전이 아니라 본당에서 춤추는 사츠키의 모습을 저는 하얀 기모노를 입고 정좌한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무서워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오늘의 액막이로 결정적인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어쩌면 난 그 여자에게 끌려갈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거야.

그것이 무서워서 어젯밤은 엄마의 잠자리에서 엄마에게 매달려 울었습니다.

형도 조부모님도 한 방에서 같이 잤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찬물로 몸을 깨끗이하고 흰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무녀복을 입은 사츠키를 따라 본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츠키는 무녀의 춤이 끝난 후, 신상에 절하고 나서 제 곁에 앉았습니다.

그때부터 시즈할머니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전에 설명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부정을 씻기 위한 기도를 한다.

원령이 무슨 수를 써서 들어온다면 그대로 원령 퇴치기도도 함께 한다.

신도적으로는 원령 퇴치 기도 등이 없기에 신주가 아닌 시즈할머니가 주관한다.

귀신을 봉하는 동안 나도 그 자리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등등.


후에 들은 얘긴데, 시즈할머니는 현역때도 액막이를 했다고 합니다.

신도의 양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의식적으로는 완전히 시즈할머니 오리지널이었다고 합니다.

시즈할머니는 신의 힘을 조금 빌려 나쁜 것을 없애거나 소멸시켰다고 합니다.

이때도 저희 액막이와는 별도로 시즈할머니식 원령 퇴치기도도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액막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즈 할머니가 졔례용 막대를 흔들며 축사를 외웁니다.

비록 생소한 말이지만 저를 위해 신께 여러가지 부탁을 드리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분좋게 울리는 축사의 선율에 두려움이 누그러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가 시작된지 몇 분만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에게 잡혔던 발목이 욱신거리기 시작했어요.

정좌하고 있을 수 없게 되어 다리를 무너뜨렸습니다.

발목을 보니 멍이 들어 군데군데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났습니다.

백의가 더렵혀졌습니다.

사츠키가 저에게 다가오고 시즈할머니가 계속 기도를 합니다.

신관이 구급상자를 가지고 와주었고, 사츠키가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시즈할머니의 기도는 계속됩니다.

다리의 통증은 심해져, 이마에 구슬땀이 맺혀 통증에 신음하는 저를 어머니와 사츠키가 부축해주고 있었습니다.

등을 문질러주거나, 손을 잡아줍니다.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만히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이 일었지만 이제와서 되돌아갈수 없다는 점과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어차피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제 마음을 산란하게 하였습니다.


전에 이겨낸 두려움은, 그때가 되어서도 다시 저를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신께서 날 보고 계셔.

무조건 지켜봐주신다. 어쨌든 여기는 본전, 신의 눈 앞에 있으니.

그렇게 강하게 마음을 먹고, 공포를 떨쳐버렸습니다.

다리의 통증은 상당했지만, 통증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저는 공포와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려움에 져버리는 것이 더 무섭다.

시즈 할머니의 기도가 열띤 느낌이 들었어요.

제례용 막대를 흔드는 탁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크게 그 목소리가 울렸어요.

평소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아니라 분노를 주장하는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본당안을 날아다니듯 소리의 원인이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시선을 허공으로 돌리며 귀신이 어디 있는지 찾았습니다.

두리번거리다 찾지 못하여, 서로를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본전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원령퇴치의 기도를 올리겠다.”

시즈할머니의 엄숙한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다시금 제례용 막대를 흔들고 축사를 외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조금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고어가 들렸습니다만,

그 자리에서는 닿지 않아 지금은 각나지 않습니다.

시즈할머니가 본당 안을 돌아다니며 제례용 막대를 휘둘렀어요.

평소 다리가 약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던 시즈할머니였는데,

이때는 놀라울 정도로 힘차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이때 이미 반이상 신이 들려있엇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본당 한 구석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 막대를 크게 흔들며 무슨 말인가를 외쳤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모습을 드러내’인 것을 어려운 말로 했던 것 같습니다.

“오루루루로에에에에…..!!!”

신음이라기보단 환성을 지르는듯한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가 뛰어오를 정도의 음량과 박력이었습니다.

“당황할 것 없네. 여기까지 끌어냈으니 이제 한숨 돌리자.”

시즈 할머니가 부드러운 음색으로 우리를 진정시켰습니다.

자아, 하며 시즈할머니가 다시 제단 앞에 섰어요.

신상을 보고 나서 다시 축사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후로 우리에게 보이거나 들리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그 상태가 계속됐어요.

시즈할머니는 기도를 계속했고, 우리 역시 지칠줄 모르고 지켜봤습니다.

느닷없이 시즈할머니의 기도가 끝났어요.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고 원령의 기색은 사라졌습니다.

“끝났다..?”

누군가가 중얼거렸습니다.

신상을 보고 시즈할머니가 이쪽으로 돌아와서 의자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습니다.

신관이 전광석화의 움직임으로 들고 온 의자에 맥없이 걸터앉은 시즈할머니는,

“제령 됐어.”

하고 말했습니다.

“원념이 강하다느니 약하다느니 하는 말과는 다르다네. 그건 우리들의 업 그 자체지.”

한숨 섞인 듯 말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흔듭니다.

“신께서도 신이시다. 일이 이렇게 되어 가슴으로 깊게 후회하고 계시다.”

그리고 시즈할머니는 일련의 재앙의 그 모든 인과를 말해주었습니다.


7화

저희는 신상에 배럐하고 나서 집회소로 옮겨, 시즈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우히코, 모두에게 배달시켜 먹여라. 모두 길어지겠지만 들어다오.”

그렇게 시즈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기억나는한 정확하게 쓰겠습니다.

200년보다 조금 전, 에도시대가 말기에 접어들려고 하고 있었을 무렵.

이곳에는 ◯◯라는 촌이 있었습니다.

이 촌이 핵이 되어 주변 촌을 합치는 것이 반복되어 생긴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우리 마을의 기본이 되는 동네 외에도 취락이 있었어요.

지금은 없는 그 취락은 범죄자나 모반인 혹은 살던 땅을 버리고 달아난 무호적자 등

공동체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든 취락이 대부분이었고 부락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동네 주민들은 믿을 수 없는 모멸 수준으로 이 취락 사람들을 기피했고,

때로 젊은 남자들이 몰려나와 마을로 나가 집적거리거나,

저항하는 부락민들을 반 죽을 정도로 두들겨 패거나 젊은 처녀들을 농락하기도 했습니다.

악한의 되어도 상대가 부락민이라면 탓할게 없다는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보통이었어요.


우리 조상들은 그 부락에 사는 사람들을 예다라고 부르며 멸시했는데,

얼마 안되긴하지만 상거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산 등에서 잡아오는 짐승의 고기와 옷가지들을 교환하는 거였죠.

당연히 거기에도 차별의식이 존재하여, 시세를 밑도는 금액으로 매입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생활이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교류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거래 상대는 우리 조상의 마을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 중에 예로부터 장사로 재산을 모아온 집이 있었는데,

당주의 이름이 야하기 토우에몬이었습니다.

영지에게 바치는 말을 길러 부적합한 말은 농민 등에게 파는 것을 허가받은 야하기가는

그 말 장사의 이익을 기초로 장사를 크게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 당주인 토우에몬은 촌장을 맡아 인심이 후한 인물로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도 얼굴이 알려진 지역 최고의 거상이었습니다.

토우에몬에게는 잘난 아들들이 있었고, 장남의 이름을 토오키치라고 불렀습니다.

토오키치는 토우에몬의 일을 도우면서 반정도 상속을 받은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동생들을 잘 보살피는 맏형으로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주위의 평판이 좋아 장래의 촌장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런 토오키치가 부락의 여자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부친을 대리해 장사를 하기 위해 부락에 갔던 토오키치는,

부락민들 중에서도 한층 가난한 차림의 여자를 처음 보게 되어,

몇번의 밀회 후 여자를 데리고 토우에몬에게 데려갔습니다.

토우에몬은 열화같이 화를 내며 여자를 손찌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칼을 빼어들고 덤벼드는 토우에몬으로부터 여자를 감싸안은 토오키치는

그 자리에서 동생에게 가주를 물려주겠다고 내뱉고 여자와 함께 부락으로 도망갔습니다.

여자의 본가에 들어간 토오키치는 집을 버린 남자로서 부락민의 자격은 있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락에 대해 위압적인 장사를 해왔기에,

부락민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된 여자 사토와 함께 사토의 친정에 살면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식량으로 바꾸었습니다.


사토는 사내아이를 낳았어요.

이름을 츠루마루라고 지었습니다.

그 뒤 이웃 마을들의 부락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장남을 잃은 토우에몬은 반쯤 은거를 하게 되었고,

토우에몬을 안쓰럽게 생각한 마을 사람이나 토우에몬에게 빌붙어 이익을 얻으려는 속셈을 가진 마을 사람들이

일부러 부락을 덮쳐 토우에몬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던 것입니다.

부락을 덮치는 마을 사람들은 점점더 가혹해져갔습니다.

그때까지는 괜찮게는 욕질로 나빠도 반쯤 죽은 상태였던 것이,

토오키치 이후로는 괜찮아도 반 죽음이고 심하게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토오키치는 부락민 앞에 끌려나와 어떻게 할거냐 따지는 부락민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청했습니다.

제발 부락에 있게 해달라고.

아내와의 사이에 있는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리고 아주 아슬아슬한 곳에서 토오키치 부자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락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예다도 짐승도 아닌 보통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된 토오키치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산과 들에서 짐승을 잡아오고.

밭이 될만한 땅을 찾아 내어 개간하고.

보수가 필요한 집이나 동네의 설비가 있으면 기꺼이 무상으로 보수하고.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토오키치는 부락에 받아들여지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는, 토오키치의 구실을 인정하는 부락민도 나오기 시작해,

토오키치 일가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미래에 희미한 불이 켜진 것 같은 자그마한 희망을 믿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토오키치가 산에서 짐승을 메고 부락으로 돌아갈 때, 멀리 달리는 말에 탄 사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내들은 칼과 몽둥이를 짊어지고 부락쪽으로 향하고 있었어요.

습격이다,하고 이해한 토오키치는 부락으로 달렸습니다.

당시 말을 탈 수 있는 농민이라고 하면 토우에몬과 친밀한 관계의 인근 마을 사람이나 그 아들들 입니다.

토우에몬의 마음에 들려는 그들의 습격은 항상 가차없었습니다.

그리고 토오키치가 당도했을 때 부락은 엉망진창이 된 상태였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거기에는 무사한 처와 아들과 장인, 장모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가족이 껴안고 무사함에 기뻐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남자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남자는 토오키치의 부락에 대한 봉사를 가장 인정하던 남자였습니다.

촌장 일가가 거의 전멸하여 촌장 아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금은 잠자코 집 안에 있으라고 남자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촌장의 아들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다시 문이 열리고 토오키치가 보니, 분노에 찬 부락민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도망쳐!

방금 집에 있으라고 충고해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도망칠 틈도 없이 토오키치는 집 밖으로 끌려나갔습니다.

부락민들은 제각기 토오키치를 욕하며 그를 구타했습니다.

토오키치는 웅크리고 폭력의 폭풍이 지나가는 것을 참고 있었습니다.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비명을 지르는 걸 들었어요.

얻어맞고 걷어차이며, 토오키치가 주위를 쳐다보니,

발가벗겨진 사토가 남자들에게 깔려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토오키치는 일어서서 사토의 곁으로 향하려 했지만,

일어서려는데 아래에서 배를 걷어차여 나가 떨어졌어요.

사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토오키치가 보자 알몸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아내가 보였습니다.

그 얼굴은 이쪽을 향해 있고, 토오키치를 보고 있었지만 눈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사토의 숨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사토의 곁에서 뭔가가 내던져졌습니다.

그것은 이미 움직이지 않게 된 아들이었습니다.

토오키치는 눈물을 흘리며 아내와 아들 곁으로 기어갔습니다.

주변에서는 남자들이 뭐라 고함을 치고 있었어요.

이따금씩 또 걷어차였지만, 토오키치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에게 서둘러갔습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래도 필사적으로 사토와 츠루마루 옆까지 이르렀을 때 두 사람이 죽은 것을 알았습니다.

절규하는 토오키치를 누군가가 메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마른 우물 바닥에 쳐박혔어요.

뚝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쿵! 쿵! 하는 소리와 위에서부터의 충격이 있었습니다.

아픔과 절망으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눈으로 토오키치가 본 것은,

토오키치와 마찬가지로 마른 우물에 내던져진 처자식의 유해였습니다.

“우우…구…크후후우우우우우….”

토오키치는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가 하얘졌어요.

눈앞에서 죽은 처자식이 불쌍해 울었습니다.

아팠겠다, 무서웠겠다, 사토의 몸에 일어난 비극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다.”

“….어…. 키치…”

“살아….토오키치…”

어둠속에서 의식이 떠올랐습니다.

힘이 다하여 정신을 잃고 있던 토오키치 바로 옆에서 호소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토오키치! 살거라!!”

정신을 차려보니 장인이 토오키치의 몸에 밧줄을 감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미안해 사토! 미안해 츠루마루! 토오키치… 미안하네… 미안해….”

장인은 울며 토오키치의 몸을 끌어올렸습니다.

이윽고 위쪽으로 소리를 냈더니, 위에서 늘어졌던 밧줄이 당겨졌습니다.

토오키치 몸이 윗쪽으로 떠올랐습니다.

온몸의 뼈가 어떻게 되어가는 것 같고 온몸에 심한 통증이 엄습했습니다.

토오키치는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처자식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우물에서 끌어올려진 토오키치는 땅바닥에 굴러져서 밧줄이 풀렸습니다.

격통을 견디며 어떻게든 일어섰습니다.

거기에는 장모와 마을에서 유일하게 토오키치 일가를 배려해준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장모는 토오키치를 보고 입을 꽉 다물고 오열했습니다.

남자는 씁쓸한 얼굴로 토오키치를 보고 있엇습니다.

장인이 우물에서 자력으로 나왔습니다.

"토오키치 도망쳐…"

장인이 말했습니다.

“미안하네, 너희가 괴롭힘 당하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네.

사토는 커녕 츠루마루까지….”

장인도 그렇게 땅을 짚고 오열했습니다.

그리고 결연한 얼굴을 토오키치에게 향햇습니다.

“토오키치! 도망쳐! 너만이라도 도망쳐!”

토오키치는 물론 도망칠 생각이었습니다.

자신까지 죽는다면 처자식에게 면목이 없다.

그런 마음으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어요.

“아버님, 어머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토오사토가 물었습니다.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며 장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것보다 토오키치, 가게.”

장인이 어깨를 빌려주며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숲으로 들어가 들키지 않게 도망치라는 거예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숲을 향해 가능한한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스러운 상황에 휩싸였습니다.

부락의 사내들은 장인 장모가 토오키치를 구해내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순신간에 포위되어, 남자가 무마하기 위해 부락민들에게 다가갔어요.

남자는 넘어뜨려져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장모가 각목으로 머리를 맞아 쓰러졌어요.

장인이 ‘아아…’하며 장모의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장인의 등에 도끼가 꽂혔어요.

쓰러져가는 장인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토오키치는 마음속으로 체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을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어요.

말 울부짖는 소리와 달그락 달그락하고 쇳소리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기세가 등등한 소리가 다수.

다그닥! 다그닥! 하는 말발굽소리가 크게 울리고, 갑자기 부락민 한 사람이 날아갔습니다.

이어서 말 몇마리가 토오키치 바로 옆에 있던 부락민들을 헤치며 지나갔습니다.

말을 탄 남자들이 유쾌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남자들 중 한 젊은이가 낯이 익었어요.

토오키치가 장사차 방문한 주변 마을의 일을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름은 분명, 지로타.

낮에 이어 야간에도 습격을 해온 것일까, 다른 마을 사람일까.

문득 토오키치는 생각했습니다만, 곧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부정했습니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딱 한가지.

그 남자들을 마을까지 데려가는 것.

그것외에 토오키치가 살아남을 길은 없었습니다.

남자들은 마을 깊숙이 침입하여 밤중에 인기척 없는 것을 빌미로 부락안을 뛰어다니고,

아무도 없는 집회소를 부수거나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난동을 다 부렸는지 마을 입구 방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토오키치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열심히 떨쳐 일으키며 걸었습니다.

토오키치를 둘러싸고 있던 부락민들은 이미 어디론가 가버린 듯했습니다.

두팔을 벌리고 길 한가운데 섰습니다.

통증으로 인해 웅크려질 것 같지만 필사적으로 계속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을 놓치면 토오키치는 또다른 폭력을 당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내들을 태운 말이 후지요시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멈춰줘!”

토오키치는 목청껏 외쳤습니다.

남자들은 말을 멈추고 토오키치에게 의아한 시선을 던집니다.

“뭐야 너, 살해당했냐?”

토오키치가 얼굴을 아는 남자가 나섰어요.

“△△마을 지로타씨죠?”

토오키치는 남자를 향해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아?”

이름을 불린 지로타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위협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촌 야하기 토우에몬의 아들 토오키치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지로타는 아하라며 말에서 내렸습니다.

토오키치 곁까지 다가가서 얼굴을 말똥말똥 바라보았습니다.

토오키치는 너무 맞아서 인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어이! 당신 토오키치씨 아냐! 야하기씨네 젊은이!”

지로타가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살았다! 토오키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잡혀 죽을 것 같아요… 제발…”

“미안하네! 이런 일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도와줬을텐데.”

지로타는 그렇게 말하며 토오키치에게 어깨를 빌려 일으켜 세웠습니다.

“돌아가자! 이런 곳에 있으면 안돼! 이봐 너희들 손 좀 빌려줘!”

남자들이 토오키치를 말에 실어, 토오키치는 지로타의 등에 기대었습니다.

토오키치의 몸과 지로타의 몸을 밧줄로 고정시킬 때, 또 온몸이 아팠습니다.

달리기 시작한 말 위에서 고통을 참으며 토오키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지로타에게 말했습니다.

낮에 잡혀간 후, 처자식이 함께 살해당한 것.

자신도 죽을 운명이었지만 장인장모의 도움을 받은 것.

도망치기 직전에 다시 포위되어 장인 장모님도 살해당한 것.

지로타들이 오지 않았다면 확실히 죽었을것.

그런 말을 마치자 지로타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우리도 말이야, 왜 이런 밤중에 부락으로 왔는지 이해가 안된단 말이야.

낮에 □□마을 놈들이 부락을 습격한 것을 듣고 왠지 우리도 안절부절 못하게 되어서, 그래서 와 보니, 네가 죽을 것 같잖아. 신기해.”

당시 부락을 습격하는 것은 주변 마을 젊은이들의 오락과도 같았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토오키치였습니다만,

조금이라도 부락민으로서 생활한 몸으로서는,

지로타들이나 □□촌 젊은이들의 만행에는 신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야밤에도 부락을 습격하러 왔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토오키치는 의식을 잃고 지로타의 등에 기대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토오키치는 본가의 자신의 방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지로타들이 무사히 토오키치를 마을로 데려다준 것 같았습니다.

몸이 아파서 일어날 수 없었지만 이불에서 기어나와 장지문을 열고 밖의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밖은 밝고 생업에 종사하는 집안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토우에몬이 토오키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토오키치는 몸을 떨었습니다.

집을 버리고 뛰쳐나갔다가 이꼴로 돌아온 자신을 아버지가 뭐라고 할까.

자상하면서도 엄한 아버지는 나를 여기서 내쫓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떨리는 입으로 아버지께 말씀드리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목이 심하게 말라 깔깔한 입김이 새어 나왔습니다.

토우에몬은 토오키치 곁에 무릎을 꿇고 토오키치의 어깨를 껴안았습니다.

“아무 걱정 말거라. 여기는 네 집이다. 잘 살아 돌아왔다.”

그렇게 말하며 토우에몬은 토오키치의 등을 다정하게 어루만졌습니다.

토오키치는 아버지의 팔 안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가 찾아와 아버지와 같이 토오키치를 껴안고,

그리고서 토오키치를 이불에 눕히고 끓인 물을 마시게했습니다.

겨우 말할 수 있게된 토오키치는 집을 나오고 나서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말을 마쳤을 때, 동석하고 있던 셋째 토자부로가 주먹을 다다미에 내리쳤습니다.

“에잇! 빌어먹을 놈들!”

일어서서 나가려는 토사부로를 토우에몬이 제지했습니다.

지금은 토오키치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토오키치가 다시 잠자리에 들자,

토사부로는 남자들을 데리고 부락으로 가, 마른 우물에 내던져진 사토와 츠루마루의 시체를 수습하여 돌아왔습니다.

야하기가 무덤 옆에 간소한 묘석을 세우고 모자는 묻혔습니다.


그로부터 반년, 토오키치는 몸을 회복하는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나을때까지의 기간동안 토오키치는 집과 신사를 왕복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요양을 하는 것 외에는 오로지 신사에서 기도만 계속 했습니다.

처자식의 공양과는 별개로 토오키치가 간절히 기도한 것은

‘저 흉한 부락을 근절하소서.’

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을 벗어난 열정과 성실함으로 마냥 기원하는 토오키치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 신사에 모셔진 신은 부락의 근절을 허락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신이 뉘우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원래 마을 신사의 신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던 신은

더러운 혈통의 부락으로 사랑의 도피를 한 토오키치를 불쌍히 여겨 죽기 직전에 구했습니다.

그리고 토오키치의 진심에서 우러나는 저주를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후회되는 그 결단도, 당시엔 의문스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제신의 뜻에 호응하듯 마을에서 부락에 대한 분노가 커져, 토사부로를 필두로 토벌대가 편성되었습니다.

토우에몬이 무훈을 세운 자에게 고액의 보수를 주겠다고 한것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지역내 남정네들이 용기를 내어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혈기가왕성해져 일종의 야릇한 흥분상태가 된 토벌대는 무턱대고 부락으로 몰려들어 부락민들을 살해했습니다.

토오키치 일가에 한 처사의 동등한 것 이상으로 보복하여 부락민을 근절한다.

토우에몬의 보수를 목적으로 앞다투어 부락민을 목매어 죽여가는 남자들.

처참하게 처참한 일을 극도로 높여가는 살해방법.

누구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지옥을 휩쓴 듯한 처참한 살육의 터는, 당연히 엄청난 원한이 소용돌이치는 땅이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그 이후에, 부락에 얽힌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냈어요.

그 살육이 마치 없었던것처럼 마을 사람들의 기억속에 봉인되어갔습니다.


그로부터 십여세대가 지난 쇼와시대 어느때,

이름 없는 꺼려지는 터로서 잊혀진 옛부락의 옛터에 하나의 원념이 형성 되었습니다.

부락민의 피에 의해 잉태되어 그 고통의 신음을 자장가로 맴돌던 원념의 덩어리는,

지역을 지키던 제신의 힘에 미치는 정도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의 신앙심이 희미해졌고,

마침내 마을 사람들이 제신에게 흥미를 잃어버린 결과,

제신은 하나의 영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두 세기를 거쳐도 더는 희미해지지 않는 사악한 의지.

발생하고 오랜시간을 제신에 의해 무위하게 보냈기 때문에, 충분히 갈아지고 숙성된 원념의 갈망은 오직 하나.

‘부락의 원통함을 씻는 것’

일찍이 미움이 미움을 부른 일.

자신들이 토오키치 일가를 린치 끝에 살해한 것이 계기가 된 것.

당시의 토오키치 일가는 부락민의 차별에 견디며 선량하고 조심하며 생활하고 있던 것.

그 기억들은 오랜시간 풍화되어 잊혀 졌지만 한만은 남았습니다.

한은 결코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제신의 힘에 의해 억눌려 있던 초조함도 원념을 조성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신의 멍에로부터 해방된 지금, 맑을 정도로 원한 이외의 감정은 버린 순수한 원령으로서,

일찍이 부락민이었던 자들의 영혼이 모여들었던 것이죠.

과거 여러 마을로 존재하던 주변 촌락들은 통폐합을 거치며 하나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고도 경제성장과 함께 개발도 진행되어 사람의 수도 증가했습니다.

원령이 당도했을 때, 우리가 사는 이 마을은 시골이면서도 사람의 활력이 넘쳐 흐르는 좋은 마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옛날만큼 제신의 힘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신사에 모셔진 느낌은 있지만, 과거 지역을 덮을 정도의 위압감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제신 대신 경제성장이라는 새로운 신에게 신앙을 바친 옛마을 사람들은,

그 살육의 기억을 조금도 하지 못한 채, 선량한 시민으로서 인생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용서할 수 없어.

일찍이 자신들에게 한 일을 잊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고 있던 제신을 모시는 것조차 그만두고 스스로 방종하게 살고 있는 지난날의 마을 사람들.


죽인다.

흉한 이들에게 피의 보답을 준다.

그 때문에 200년이 넘는 세월을 꺼리는 땅에서 견뎌 온 것이다.

용서할 수 없어. 죽일거야. 용서할 수 없어. 죽일거야. 용서할 수 없어. 죽일거야.
용서할 수 없어. 죽일거야. 용서할 수 없어. 죽일거야. 용서할 수 없어. 죽일거야.
용서할 수 없어. 죽일거야. 용서할 수 없어. 죽일거야. 용서할 수 없어. 죽일거야.

그리고 참극으로부터 2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 옛 부락민들의 영혼은 무서운 재앙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시즈할머니가 이야기해준 것은, 소네자키씨가 반입한 고문서보다 한층 더 깊이 파고든 내용이었습니다.

원령의 내력.

그 너무나도 이기적인 폭력의 가해자가 우리 조상이었다는 것은 아무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건가요?”

누군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그것의 한을 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두 함께 생각해보게.”

시즈 할머니가 대답했어요.

마을 전체가 몰살당한 129명의 억울함.

그것을 어떻게 풀겠다는 건가.

“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또 누가 말했어요.

이봐, 하고 나무라는 소리도 들렸지만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옛날일, 이제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 없어요.

그런데도 신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건가요!”

그렇게 외친 것은 야마타니씨라고 하는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평소의 조용한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강한 어조에 모두 놀랐습니다.

“좀 전의 기도로 부탁해보았죠?”

그 소리에 시즈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렇지만 말이야, 옛날과 달리 지금은 신을 믿는 사람이 적어졌다네.

지금 신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 정도일 게야.

믿음을 잊은 백성들을 신이 어떻게 다루셔도 할 말이 없지.”

시즈할머니의 말에 침묵이 찾아왔습니다.

신은 돕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재앙은 신벌이라는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에서 다른 인상이 강하게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이 도와주신 것 같아요.”

그날 신의 기척을 느낀 후 꿈을 꾸고 두려움을 이겨냈던 때를 이야기했어요.

“너희들은 열심히 신의 일을 돕고 있었으니까,

신께서도 좋은 기억이 있었겠지.

특별히 돌봐주신 건 정말 감사한 일이야.”

시즈할머니는 피식 웃음을 건넸습니다.

“그럼 우리는!”

야마타니씨가 또 외쳤습니다.

“침착하시게. 아까도 말했든 그것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반드시 있을게야.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네.

이 마을에 대한 신의 흥미가 떨어졌다 해도,

그래도 여기에 있는 우리를 좋게 봐 주신다.

믿게. 네가 신을 믿지 못하는데 신이 자네를 어떻게 믿겠는가.”

그리고 나서 잠시 시즈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약간의 안정을 되찾은 우리들은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마을을 수호하던 신은 시대가 변하면서 이 마을과의 관계가 엷어져 버렸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신으로부터 멀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이라 해도,

누군가 비는 것도 아니고 몸을 내주면서까지 우리들을 지킬 의미가 없어져 버린 것이라고 시즈할머니는 말했습니다.

신은 어디까지 우리들이나 이 마을을 지켜주는 걸까.

가족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랜만에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저의 액막이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이상한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

무서운 신음소리

하지만 목을 매다는 일은 저의 액막이 이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액막이라기 보다는, 시즈할머니의 기도가 효과가 있었던 거겠죠.


연초를 맞이한 시노미야 신사는 엄청난 수의 참배객을 대응하는 것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시작된 괴이 때문에 누구나 신불의 가호를 위해 신사와 절에 참배했던 까닭입니다.

그 기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저희 형제도 신사를 도우러 갔습니다.

평소에는 잘 걸치지 않는 신관의 의복을 입고,

예년에 유례없는 수의 참배객 정리나 주차장의 유도 등을 돕고 있었습니다.

연말 기도 뒤부터 시즈 할머니는 기력이 없었어요.

원래 조용한 사람이었고, 우울하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말을 걸어도 건성이랄지,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새해 첫 참배 날에는 시즈 할머니가 경내안의 히터가 설치된 휴게실에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년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어요.

아마 연말부터 계속 시즈할머니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초의 3일이 지나고 얼마되지 않아 다시 원령 퇴치 기도가 거행되었습니다.

본당에는 시즈할머니와 신주, 사츠키와 우리 형제, 그들의 가족이나 가문 사람들 몇 분.

지난번처럼 원령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무서운 신음소리를 내며 우리를 위협했습니다.

발목에 멍이 들고, 피가 번졌습니다.

시즈할머니 역시 지난번처럼 신들린 채,

당내를 돌아다니며 어느 한 점까지 원령을 몰아붙이며 축사를 외웠습니다.

기억이 애매해서 확실한 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만,

알아듣기 어려운 축사안에 이런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이 몸에…….. 의 원통함을…. 없애고자 합니다…뜻을 이루옵고…..없애주시옵소서…."

그리고 유난히 큰 제사용 지팡이를 흔들던 시즈할머니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움직이지 않았어요.

신주가 이어 신상에 기도하고 기도를 끝맺었습니다.

신주는 기도가 끝나자마자 시즈할머니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습니다.

저희도 시즈할머니께 달려갔습니다.

시즈할머니는 잠들어 있었어요.

조용히 숨소리를 내며 언뜻 보기에는 편안하게 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후에도 시즈할머니가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구급차로 시즈할머니가 실려 갔고, 모인 가문 사람들도 귀가한 후,

우리는 본당에서 신주님과 마주보고 앉아있었습니다.

병원에는 사츠키의 어머니가 문병 갔습니다.

우리도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사츠키와 우리 형제는 남아있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도 동석한 자리에서 신주님이 저희에게 이번 기도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신주님이 말하길, 시즈할머니는 원령을 만나기 위해 현세를 떠났다고 합니다.

기도속에서 원령과 대화를 시도하고,

가능성이 있다면 그대로 영체가 되어 원령을 진정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런! 할머니는 혼자 귀신과 싸우는거에요?”

사츠키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신주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싸운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뭐 그렇지.

할머니는 우리를 위해 해주고 계시단다.”

“왜 말리지 않았어요? 숙부는 알고 계셨죠?”

사츠키가 따지듯 묻습니다.

“사츠키 들어라.

할머니는 당신께서 다 끝낼 테니 나는 너희와 마을 사람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단다…..”

말하는 도중 신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한손으로 눈을 가리고 오열했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반응에 우리는 놀랐어요.

“숙부, 할머니가 뭘 하시려는지 알고 있어요?”

신주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신주에게 사츠키는 강요하지 않는 듯하게,

무릎 위에 손을 움켜쥐고 안타깝다는 듯이 몸을 비틀었습니다.

“시즈할머니는 지금 어떻게 됐나요?”

형이 사츠키 대신 신주님께 물어봤습니다.

“아아… 그래…”

고개를 숙여 오열하던 신주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얼굴은 초췌했고,

슬픔을 머금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와 마주볼 의사가 느껴졌어요.

그 얼굴을 보고, 시즈할머니가 사지로 향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신주는 시즈할머니를 말리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남아주셨다는 것도.

“시즈할머니는 원령과 마주보고, 우선 그 생각을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령이 안고 있는 원념, 억울함, 원한 같은, 그것을 어떻게든 풀어주고 싶다고.”

사츠키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시즈할머니는 연세가 많기에,

당신께서 이제 곧 때가 올 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목숨을 걸고 원령과 맞서기로 했어.

오랜 수행 중에 신과 합일해온 시즈할머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다고?”

사츠키의 목소리는 작고 가냘펐습니다.

“여간해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너희들도 아까 보다시피 시즈할머니는 육체적으로는 그저 잠들어계실뿐이니까.”

그 말에 사츠키는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되는 눈치였습니다.

“시즈할머니께서 걱정하신 것은,

원령과의 일 중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이야.

산자의 시간과 영혼의 시간은 다르니,

얼마나 오래 걸릴지 할머니께서도 모르겠다고 하시더구나.”

“무슨 말이에요?”

“이대로 계속 잠들어있다가, 할머니께 육체적인 한계가 오는게 유일한 걱정거리라고 하더라.”

그렇게 시즈할머니는 혼수상태로 입원했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을 경계로 괴이한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즈할머니는 보기좋게 원령을 제압한 것입니다.


마을을 덮고 있던 불안의 기색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계절은 흘러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형과 사츠키가 고등학교 2학년.

제가 중학교 3학년인 가을, 시즈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원령과의 대화를 시작한 이후 한번도 깨어나지 못하고,

가족과 저희 형제에게 간호를 받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2세.

의사 요네즈는 시즈할머니의 사체를 정중하게 확인하고 나서,

“운명하셨습니다. ◯◯시 ◯◯분, 임종하셨습니다.”

호흡기, 링거와, 호스를 통한 영양공급으로 연명조치가 취해졌지만,

그래도 서서히 약해져간 시즈할머니는,

수척해져 미라와 같은 모습이 되어도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한계는 이미 맞이하고 있어서,

아무리 사정을 아는 병원이라도 무리한 연명을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신의 가호를 한몸에 받은 시즈할머니는,

인지를 초월한 활동 속에서 소임을 다하고,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즈할머니께서 숨을 거둘 때, 우리는 할머니의 병실에 모여 있었습니다.

침대에서 잠이 드신 시즈할머니를 둘러싸고 시즈할머니가 좋아했던 링고의 노래를 부르며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갑자기 병실 안에 달콤한 향이가 감돌았습니다.

저는 그 향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때, 축제를 위해 청소하고 있을 때 본당안에서 풍겨온 향이었어요.

신기하게도 시즈 할머니의 입에서 호흡기가 떨어졌습니다.

마치 시즈할머니가 그 향기를 느끼고 싶어한 것 같았어요.

시즈할머니는 두 번, 세 번, 얕은 호흡을 하고,

후-하고 길게 마지막 숨을 내쉬고 숨을 거두었어요.

삐------하는 심정지를 알리는 소리가 모니터에서 났습니다.

티비 같은 것에서 본적 있는 그 광경에 시즈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 미안해요… 할머니…. 우우우…..우아아아…..”

사츠키가 시즈할머니에 매달려 울었습니다.

신주는 어깨를 들썩이며 할머니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사츠키의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 모두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밤샘 준비가 이루어졌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즈할머니가 꿈속에서 원령과 대화를 시작하고 조금 지났을 무렵 사츠키가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일관적이고 연속적이었습니다.

그건 시즈할머니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꿈이었습니다.

매 꿈마다 다른 어딘가의 누군가가, 시즈할머니를 괴롭혀 죽이는 것입니다.

때로는 남성이거나 여성이거나 여러명, 아이일 때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증오하는 표정으로 시즈할머니를 두들겨 패고 목을 조르거나

식칼, 도끼 등으로 마구 때리다가 결국 목숨을 앗아가는 겁니다.


처음 꿈을 꾸었을 때 사츠키는 울면서 늦은 밤에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형을 깨워 전화를 건네고, 심상치 않은 사츠키의 모습에 형은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에야 그 사실을 알고 사츠키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사츠키는 잠옷차림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곁에는 사츠키의 어머니와, 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벌써 출근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형으로부터 꿈의 내용을 듣는 동안 사츠키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츠키를 위로하며 격려했습니다.

무서운 꿈을 꿨네, 이제 괜찮아하고.

그때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사츠키는 이후에도 같은 꿈을 며칠 간격으로 반복해 꾸게 되었어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조롱당하는 시즈할머니.

죽이는 건 매번 다른 어딘가의 누군가.

사츠키는 날이 갈수록 어두워졌습니다.

저희는 사츠키가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했어요.

어느날 사츠키는 신사에서 신사에서 신주에게 따졌습니다.

“저건 할머니가 원령에게 시달리는 모습이야! 숙부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신주는 사츠키는 달래느라 혼났어요.

“어째서 모른다는거에요! 할머니가 힘들어하시는데 아무것도 안해요!?”

사츠키는 반쯤 미친 것처럼 소리쳤습니다.

“사츠키, 진정해렴. 진정하고…”

“지금 당장 할머니를 깨워줘요! 지금도 할머니는 살해당하고 있잖아요?”

“만약 그 꿈이 사실이라고 해도….”

“정말 뻔하잖아요!!”

사츠키의 비명 같은 외침에 한순간의 침묵이 찾아왔습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까 침착해라.

그 꿈속에서 할머니가 원령의 뭇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고 해서,

그걸로 할머니가 한을 풀려고 한다면 말릴수 없지.”

“읏!..... 진심이에요?”

사츠키가 아연실색하며 신주를 노려보았습니다.

“말릴 수 없다고요? .... 그게 무슨…

인간이 돼서 그런 말을… 숙부… 아들이잖아요?”

분노에 찬 사츠키의 박력에 모두가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격렬한 분위기의 사츠키를 본 것은 나중에도 그때뿐입니다.

“사츠키, 잘 들어라. 나도 할머니가 힘들어하시는 걸 알고있고 힘이 들어.

아마 네가 꾸고 있는 꿈은 진짜 일거야.

그래도 할머니가 짊어지고 있는 것은 중요한 역할이다.

누군가가 해야하니까 할머니가 하시는거야.”

신주의 눈이 순식간에 빨갛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참으며 계속 사츠키에게 이야기합니다.

“할머니는 죽음을 각오하고 원령과의 대화에 임했다.

그건 들었지. 그 결의와 각오를 너는 불쌍하다며 부정하는 거냐?”

이것에는 사츠키도 압도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츠키도 반박합니다.

“한두번이 아니에요!? 매일 그런식으로 살해당하다니….

그렇게 각오를 했더라도, 죽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는 신주가 외쳤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막을 수 없어!”

무릎을 치면서 억울하다는 듯 말했어요.

평소의 온화한 신주로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소리였습니다.

신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 또 몇 명이나 죽나?

그러면 어떻게 하지? 누군가 희생해 줄 사람을 찾나?”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사츠키를 바라보는 신주에게, 사츠키도 압도된 것 같았어요.

“우리가 해야한다!
…. 할머니는 할수 있으니까 하시는거야…

나도… 내가 힘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하며 신주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불과 몇 초, 신주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말했어요.

“만약 할머니로 안되면, 다음은 내가 하마.”

무슨 말인지 순간 알 수 없었어요.

“내겐 할머니 같은 힘은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지, 그러니까 혹시나…”

신주는 일단 말을 끊었습니다.

일순간이었지만 주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나로도 끝나진 않는다면,

여기 있는 누군가가 그 역할을 넘겨 받았으면 좋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

누구도 한마디도 할 수 없었어요.

그 자리에는 사츠키와 저와 형, 사츠키의 모친 그리고 여러명의 신관들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임무를 이어나가겠다.

원령의 원한이 풀릴때까지 계속 괴롭힘당하고 죽임당하는 역할을.

사절이야.

농담하나.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거에요.

사츠키를 제외하고.

다음날이 되어 신관 한 분이 퇴직하여 나갔습니다.

저는 다음날이 되어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고민했습니다.

형도 마찬가지였어요.

시즈할머니나 신주의 각오는 매우 훌륭하지만,

그 각오를 자신도 가지라고 한다면 무리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신관조차 도망치는 그 역할을 도대체 누가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말없이 시즈할머니가 계신 병원을 향해 걷고 있었습니다.

병실에는 사츠키가 있을 것입니다.

꿈을 꾸게 되고 나서 사츠키는 매일 시즈할머니 곁에서 간병을 했습니다.

저희들 역시 시즈할머니 곁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사츠키와 만나 시즈할머니를 문병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츠키는 자주 외출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주말을 이용해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사츠키는 카구라를 배우러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규슈 각지와 시코쿠, 혼슈의 유서깊은 신사를 소개받아

카구라를 배우고 무녀로서의 소질을 높이기 위한 수행을 반복했습니다.

유명한 카구라 선생을 초대해 시노미야 신사의 카구라전에서 실용지도를 받고 있을때서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이미 사츠키는 속으로 시즈할머니의 뒤를 잇겠다는 결심이 섰던 것이겠죠.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저 자신도 다음 역할은 나일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각오나 사명감 따위는 전혀 없었고, 가능하다면 절대로 피하고 싶은 역할이었지만,

지금까지의 체험으로 미루어 제가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날, 꿈속에서 신이라고 생각되는 누군가가 한 소리.

“사츠키는 가엽단다. 네가 받쳐줘야해.”

그 말이 가슴 깊이 남아있었어요.

게다가 제 발목에는 아직 귀신에게 잡혔을 때의 멍이 가시지 않고 남아있었습니다.

시즈할머니가 기도로 원령을 부를때도 내 멍이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바로 저 자신이 원령과의 연관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사츠키는 며칠 간격으로 시즈할머니의 꿈을 계속 꾸었습니다.

우리는 시즈할머니께서 어떻게 살해당하셨는지 사츠키로부터 전부 듣고 있었습니다.

사츠키는 날이 갈수록 침체되었고, 곁에서 보고 있는 우리도 괴로웠으므로,

사츠키 한 사람이 그 꿈을 짊어지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져 사츠키에게 꿈의 내용을 이야기하도록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관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중3이 되면서 아이 티를 완전히 벗어난 형이 사츠키와 헤어지게 된것입니다.

형은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이고,

교복을 고치고, 카나모리 선배와 놀거나 하게 되었습니다.

1년 이상에 걸친 불안을 잊으려는 듯 형은 건들건들거리게 되었고,

시즈할머니의 병실에 오는 일도 점점 줄어들어갔습니다.

형은 사츠키와 어른이 되어가는 단계를 같이하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정작 사츠키는 평범하지 않고,

또 무녀로서 수행을 하는 이상 이성과의 성적인 관계는 엄금하기 때문에,

사츠키와 형 사이에 틈이 생겼습니다.

결국 사츠키 쪽에서 이별을 선언하고 친구로 돌아가기로 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말을 사츠키로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기회가 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이 괴이가 해결되고 난 뒤라는 생각은 사츠키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츠키는 무녀로 수행하기 위해,

형은 경박한 남자가 되어가고,

저는 딱히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신사의 심부름이나 청소를 하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시즈할머니의 병실에 가지 않는 날은 항상 신사의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신관분들 틈에 석여 축사 공부를 하거나 폭포수를 맞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잘만 되면 다시한번 신을 뵙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나중에 지적을 받은 것이지만,

저 자신도 충분히 신관견습이라고 할 수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9화

할머니의 장례식이 거행되면서, 마을에는 다시 괴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3년 전처럼 괴담 같은 현상이 마을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목 매단 시체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처럼 느껴졌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다음 기도를 올릴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갑자기 신주가 모두를 모아 유언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생전에 작별 인사를 마친 뒤,

시즈할머니와 같은 기도를 드리며 원혼을 달래는 인간 제물이 되는 의식에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사의 본당에 모여 신주로부터 그런 설명을 들은 것입니다.

모인 전원이 침울한 표정으로 신주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신주 본인은 무리하며 평소보다 밝게 행동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있었습니다.

신주님, 가능하실까…?같은

영감이 강한 시즈할머니이기에,

제 액막이에 맞춰 원령 퇴치 기도를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원령과 대화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영감이 약하다고 말한 신주가 과연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큰맘 먹고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저기… 원령을 부르는 방법을…. 알고 계신가요?”

신주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시즈할머니 유품 중에 의식의 순서와 축사가 적힌 자료가 있었어.

축사를 안다면 나머지는 여느 기도와 같으니까 아마 괜찮을거야.”

아마인가……….

마음속의 추궁을 꾹꾹 눌러 참으며 저는 “알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송별회까지 열어놓고, 못하겠습니다 같은 모양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신주는 장난 없이 정말 성실했습니다.

“일단 내 뒤의 역할이 필요할때를 위해,

나도 자료를 남겨 놓았으니 필요한 경우에는 그것을 참고하시오.”

그래서 여기는 그냥 되는대로 맡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 고조된 긴장 속에서 신주의 유언을 듣고 나름대로 눈물을 흘리며 작별회는 끝났고,

다음날 기도가 거행되었습니다.


본당 안에서 전과 같이 사츠키가 무녀의 춤을 추었습니다.

신주에게 도움을 신께 부탁드린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3년간, 열심히 카구라를 배워온 사츠키의 춤은 너무나 눈에 익었을 우리들조차도 홀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신내림.

사츠키는 이때 바야흐로, 제신과 심신이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춤 속에서 사츠키는 신과 마을을 나누어,

신의 뜻과 사츠키의 뜻이 일치하는데까지 자신을 신에게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사츠키 소망 또한 신께 빌었습니다.

조용히 춤을 춘 사츠키가 신상에 절하며 제 옆에 앉았습니다.

이어서 신주가 나서서 기도를 시작했어요.

언젠가 들었던 시즈할머니 직접 만든 축사를 외웠습니다.

그러자 지난 3년간 따끔거리지 않던 제 발목에 멍이 들기 시작했어요.

“윽….!”

이렇게 쉽게 원령을 불러낼 수 있는 건가 하고 놀랐지만,

서서히 강해지는 통증으로 사고는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멍에 피가 배어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세를 흐트린 저를 전과 같이 사츠키와 어머니가 보살펴 주었습니다.

“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오오오오…..!!!!”

원령의 신음소리가 당안에 울려퍼지고, 신주의 기도가 열을 띠어갔습니다.

시즈할머니처럼 걷거나 하지 않은 채,

잠시 기도가 계속되다가 마침내 신주가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신관이 신주의 기도를 이어받아 신상에 기도하고 기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구급차를 불러 신주가 실려갔고, 의식은 끝이 났습니다.

의식의 성공에 따른 안도와 새로운 제물이 된 신주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은 한동안 당내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사츠키가 어질어질하기 시작하여 이윽고 웅크리고 신음하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주위 사람들.

설마 원령인가 하고 모두가 생각하는 것을 알았으므로 “괜찮습니다”라고 손짓을 섞어 말했습니다.

“사츠키는 무녀의 춤을 춘 뒤 자주 이래요.

시즈할머니가 말씀하시길 신이 들려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게 설명하고, 사츠키의 어머니가 모시는 차에 사츠키를 태웠습니다.

가문 대표가 모두에게 해산을 말하고, 신관분들에게 인사하고 각각 귀로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3일 후, 신주가 깨어났습니다.

병원에서 수발을 들고 있던 사츠키가 깨어난 신주에 놀라 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사츠키와 사츠키의 어머니,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은 신주가 있었습니다.

인간 제물이 깨어나다니 무슨 일인가 하고 묻는 것도 은근히 꺼려졌기에

“무사해서 다행입니다”라는 이유 모를 인사를 했습니다.

신주는 미안한듯 어려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신주가 말하길, 그날 확실히 원령을 불러내서,

신주가 마을로 변하여 원한을 받아들이는 취지의 축사를 외우고,

원령도 그것에 얽매여 신주의 영혼을 아프게 하거나 죽이거나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신주는 원령에게 여러 번 죽음을 당하는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대로 원령의 한이 풀리든지 신주의 육체가 어떤 사정으로 죽든지 간에 신주는 원령의 복수를 이뤄줄 생각이었다고.

그러나 웬일인지 눈을 떠버렸다.

눈을 뜬 이유는 불명.

의식이 잘못된 것인지, 영력이 부족한 것인지,

혹은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지금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물이 된 신주가 깨어나 버리면,

다시 마을에 괴이가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서둘러 대책을 생각해보자고 해서, 그날은 해산을 했습니다.


그날밤, 사츠키는 원귀에게 죽임을 당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사츠키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은 저는 아침식사도 하지 않고 사츠키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츠키의 집에 도착한 저는 초인종을 누르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츠키! 아주머니! 들어가요!”

그렇게 말하며 신발을 벗고 거실로 서둘러 갑니다.

거기에는 어머니에게 매달려 잠든 사츠키와 그 어깨를 감싸안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츠키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사츠키의 어머니 사키에씨가 말하기를 새벽에 사츠키의 외침에 잠이 깨어 방으로 갔더니 사츠키가 침대위에서 울부짖고 있었다고 합니다.

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은채 몸을 비틀며 절규하는 사츠키를 억지로 깨우려고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걸었는데,

사츠키는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그리고 뒤로 젖혀지며 입을 크게 벌리고 혁을 쑥 내미는 듯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대로 “아….아…가…..”라고 신음하는 사츠키.

마치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사키에씨는 사츠키를 두드려 깨우려고 한 것 같지만,

사츠키는 전혀 깨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실이 끊긴 것처럼 사츠키가 침대에 가라앉았습니다.

사키에씨는 사츠키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과 몇초만에 사츠키는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사키에씨에게 매달려 통곡하고 거실로 옮겨도 계속 울다가 그대로 울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사키에씨는 어찌할 바를 모른채,

입원중인 신주에게 연락을 취할 수 도 없어, 우선 저에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사키에씨로부터 사정을 들은 저는 그대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신주에게 오늘 아침 일어난 일을 전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가를 의논했지만,

깨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깨어버린 신주에게 해결책 같은 것은 생각날리가 없어,

우선 사츠키가 눈을 뜨면 이야기를 듣는 것밖에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사츠키의 집으로 돌아오니 사츠키가 깨어있었습니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사키에 씨를 보면서 거실에서 멍하니 있는 중이었습니다.

학교는 쉰다고 했습니다.

저도 집에 전화해서 엄마에게 학교를 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츠키의 꿈에서 무슨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어요.

사츠키는 꿈속에서 살해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성급하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신주의 기도가 실패한 탓인지 어떤 원인으로 신주의 역할이 사츠키로 옮겨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의 사츠키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잠이들면 원령이 찾아와 사츠키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먼저 귀신은 자신이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사츠키에게 환시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고통을 사츠키에게 준 뒤 죽이겠다고 위협하여 실제로 사츠키를 괴롭힌 다음 죽이는 것입니다.

“싫어어어!!! 아파… 아파…!!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싫다…고….”

잠들어있던 사츠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그 목소리는 결코 환각따위가 아닌, 강렬한 통증을 느껴서 울리는 절규였어요.

사키에씨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저와 저희 어머니가 번갈아가며 사키에씨를 도왔습니다.

퇴원한 신주도 시간이 있을때마다 사츠키의 집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원령이 머물며 아프게 하는 동안, 사츠키는 우리의 부름을 듣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럴때가 아니었습니다.

필사적으로 부르며 사츠키를 껴안았는데,

아픔에 기절하는 사츠키는 누구의 손이라도 뿌리치고 몸부림치며 돌아다닙니다.

떄로는 머리채를 잡히고 휘둘리기라도 하듯 침대에서 몸을 던지기도 하고 머리를 벽에 부딪히기도 했죠.

우리는 그것이 무서웠고, 아픔과 공포에 울부짖는 사츠키를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츠키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잠들면 원령이 온다.

그 두려움에 사츠키의 정신이 잠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며칠간격으로 시즈할머니가 죽음을 당하는 꿈을 꾸던 사츠키였지만,

사츠키 자신이 꿈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빈도는 거의 매일이었습니다.

잠을 잘 수 없게 되자 깨어있는 동안에도 원령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평범하게 말하고 있던 사츠키가 돌연 소리지르는가 하면,

자고 있을 때처럼 몸부림치거나,

침대나 소파에 억눌릴 수 있도록 해서 목이 졸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창문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는 귀신을 발견한 것 같은 때에는 “이제 싫어-!!”하고 외치다 머리를 감싸안고 그대로 목을 쥐어짜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츠키가 보는 세계은 무섭고, 사츠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가혹했습니다.

당연하지만 살해되고 있는 것은 사츠키의 혼이라고나 할까 정신이기 때문에 현실의 사츠키가 죽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살해당하는 것 같은 체험을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사츠키는 날이 갈수록 약해져갔습니다.

눈에 띄게 쇠약해지면서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원령에 소름이 끼치면서도,

사츠키는 자신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시즈할머니보다 더 쓰라린 경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키에씨가 이성을 잃고 신주에게 의식을 거행하도록 다그친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대신할 테니 사츠키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신주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지만 사츠키가 거부했습니다.

“그때 말이예요, 카구라중에 신에게 부탁했어요. 제가 할머니의 역할을 이어받겠다고요.”

“어떻게….”

신주가 말문이 막혔어요.

“어떻게 그런 말을!”

사키에씨가 사츠키의 양 어깨를 잡았습니다.

사츠키는 곤란한 듯 작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할머니가 혼자 싸우는 모습을 계속 지켜봐서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으오오오….”

그런 소리를 내며 좀처럼 울지 않을 것 같은 신주가 울었습니다.

“사츠키… 미안하다…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었다면…”

“숙부, 미안해요. 마음대로 해서.”

사츠키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앞으로 흔들었습니다.

아까부터 몇번인가 불규칙한 타이밍에 앞뒤로 흔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마.

“사츠키… 지금 혹시 뭐하고 있는거야?”

저는 사츠키에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응, 왠지 아까부터 등을 쿡쿡 찔려. 어린아이의 영혼인가봐.”

사츠키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괴로운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 사츠키! 역시 내가 대신해서 할 테니까…”

사키에씨가 사츠키를 감싸듯이 껴안았습니다.

“으응. 아이라서 그런가 별로 아프지 않아. 그러니까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츠키의 이마에는 진땀이 배어있었습니다.

아이의 힘이라고 해서 등을 찔려 아프지 않을 리 없다.

그래도 낫다고 할 정도의 고통을 거의 매일 그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츠키가 처한 상황의 비참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에게 있어 인연이 있는 영혼이 나타났습니다.

대법회의 그 날, 절 죽이려다 발목에 지워지지 않는 멍을 남긴 그 여자의 영혼입니다.

늘 그렇듯이 사츠키의 집에서 사츠키와 함께 지냈는데,

오늘은 원령의 습격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발목이 저릿저릿 아팠습니다.

그와 동시에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두려움이 안에서 끓어올랐습니다.

위 속에 쓰고 무거운 액체가 흘러들어간 느낌.

온몸의 피가 거품이 일고 귀 뒤에서 깡깡하고 이명이 울리는 듯한 절박감을 느끼며 저는 무언가가 왔다고 확신했습니다.

식은 땀이 순식간에 전신을 적시고, 물방울이 되어 목덜미를 통해 등으로 흘렀습니다.

어디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방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미 해가 져서 밖은 어두컴컴하고 방의 불빛이 창문에 반사되고 있습니다.

방안이 희미하게 비치는 중에, 밖에서 이쪽을 응시하는 그 여자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으악!!”

저는 소리치며 일어나 방 반대편으로 물러섰습니다.

사츠키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데 저만 여자의 영에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창밖에서 사츠키가 아닌 저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어요.

그때처럼 긴 검은 머리를 얼굴에 붙이고,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그 여자는 영락없이 그때의 영혼이었습니다.

여자에게서 거리를 두려는 듯 방 반대편 벽에 붙은 제 등 뒤,

그 벽 너머에서 쾅!하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윽….!”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반사적으로 벽에서 몸을 떼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쾅! 쾅! 쾅!

연달아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그 소리에 사츠키도 원령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사츠키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다는 듯 소파에 걸터 앉아 두팔을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사키에씨가 사츠키의 옆으로 달려가 사츠키의 어깨를 껴안았습니다.

다시 창문으로 눈을 돌려보니 여자의 영은 여전히 창밖에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쾅!하고 벽이 훨씬 더 크게 울렸어요.

발목이 쑤셔서 눈을 아래로 향했더니 발밑에서 여자 귀신이 저를 올려보았습니다.

이런! 지금까지 밖에 있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에 여자의 영이 오른쪽 발목을 잡았습니다.

다음 순간, 저는 발목을 잡혀 넘어졌습니다.

넘어진 저를 바로 가까이에서 내려다보았어요.

그때와 똑같이.

그 때의 연속이라는듯이.

“우오… 으오아아아아!!!”

정신을 차려보니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케이! 왜 그래!”

사츠키가 외쳤습니다.

여자의 영은 제 얼굴 가까이까지 얼굴을 들이댔습니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앙으으으으으….”

그 목소리가 뭔가 유쾌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즐기고 있다.

이 새끼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어요.

히이하는 얼빠진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올 뿐입니다.

귀신이 제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볼 수 있었어요.

그 여자가 살해당할때의 자초지종을요.



10화

여자는 남편과 아이들 눈앞에서 범해져 살해당했습니다.

공포와 고통으로 절규하다가 목이 짓눌렸습니다

입에서 흘러나온 피로 숨이 막혀,

몇번이나 피가 섞인 구토를 하는 동안에,

여자를 범하고 있던 남자는 흥이 깨졌는지 여자를 떠나,

옆에 누워있는 소녀에게 올라탔습니다.

소녀는 부락의 아이로 여자와도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아직 경험이 없었을 거예요.

아픔과 증오로 여자의 사고가 빨갛게 덮였습니다.

죽여버리겠어! 그렇게 염원하며 남자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아아아…아아아….”

여자의 입에서 나온 것은 말도 안되는 신음이었습니다.

늘 우리가 듣던 소리는 이 여자 목소리 같았어요.

여자가 뒤에서 손을 뻗어 남자의 어깨를 잡았어요.

남자가 돌아서서 여자의 안면을 후려쳤어요.

여자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코에서 피가 튀었어요.

여자는 그래도 사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오아악! 오르르에에윽윽윽…!!”

남자는 여자를 때리며 주위에 뭔가의 말을 외쳤어요.

퍽!소리가 나며 머리 뒤에 충격을 받았어요.

이어진 격통.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앞으로 넘어졌어요.

얼굴을 땅에 푹 박은 여자의 시선 끝에 소녀에게 남자의 엉덩이가 보였습니다.

끔찍한 움직임을 보이는 그것을 보면서 여자는 의식이 어둠에 잠겨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아이의 얼굴이 머리에 떠오른 것 같았어요.

그리고 여자는 죽었습니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현실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여자가 죽을때의 정경이 눈깜짝할 사이에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공포나 원망도 모두 따라 경험했습니다.

저는 당황스러웠지만 이것이 원령의 원한 그 자체라고 이해했어요.

여자의 영이 제 얼굴을 향해 손을 뻗어왔습니다.

안돼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 여자는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몸짓을 한 뒤 일어나 사츠키쪽으로 휘청거리며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공포에 일그러지는 사츠키의 얼굴 잡고 목을 비틀었습니다.

제 눈 앞에서 사츠키의 머리가 천천히 90도 이상 회전했고,

사츠키의 몸은 인형처럼 부서졌습니다.

“으…아…사츠키”

저는 사츠키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평소에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 보이고,

사츠키가 죽어도 기절한 것처럼만 보였는데,

그때는 사츠키가 목이 비틀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 귀신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았습니다.

그 귀신이 저를 보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끝내는 저를 죽이지 않고 사츠키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원령은 시즈 할머니의 축사에 묶여, 신주나 사츠키 이외의 영혼을 죽이지 못한다.

그렇게 깨달은 것은 조금 지나서부터의 일입니다.

원령의 일부인 여자의 영혼 또한 저를 죽일 수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를 알아보고 덤벼드는 것을 보아 저와 여자 영혼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령의 존재를 인식하고, 실제로 만지기도 하였고,

사츠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저는 사츠키와 같은 세계에 있었습니다.

“사츠키! 사츠키!”

사키에씨가 사츠키를 안고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상황에 사키에씨도 상당히 동요하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평소같으면 쓰러져 버린 사츠키를 위로하듯 눕히는 사키에씨가 그때는 열심히 사츠키에게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자의 영혼은 사라져있었습니다.

사츠키에게 달려가보니 사츠키는 자고 있었습니다.

비틀렸던 고개는 앞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조금 전의 광경은 사츠키만 보고 있던 영혼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으윽…쿠…쿠으으으….!”

저는 매우 오열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것 보다도,

그런 공포를 매번 맛보고 있는 사츠키의 현실에 마음이 찢어져 울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하는 생각에 너무나도 끔찍한 과거와 현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신에 대한 분노가 솟아났습니다.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츠키가 이 지경인데 왜 신은 도와주지 않는가 시즈할머니는 돌아가셨어!

사츠키도 이대로 죽게할 생각인가!

나에게 사츠키를 지키라고 한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사츠키는 가엽단다. 네가 받쳐줘야해.”

갑자기 그 소리가 다시 들린 것 같았어요.

신이라 생각되는 누군가는 저에게 버티라고 했어요.

신이 아니라, 내가 사츠키를 받쳐주고, 돕는다.

어떻게하란 말인가.

사츠키를 대신해 소임을 맡으라는, 그런 말인가.

저는 눈물을 닦고 사츠키의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습니다.

받치라니, 대신해서 하라는 것인가.

아닌 것 같아.

그런 말이었다면 대신하라거나 지키라고 했을 거야.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 사츠키를 받쳐주려면 우엇을 해야할까.

고통을 나누었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사츠키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사츠키가 눈을 떴습니다.

“케이.”

사츠키가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까, 보였어?”

“응”

“왜 그런걸까.”

“그 여자 귀신, 내 다리에 멍을 만든 놈이야.”

그 말을 듣고 사츠키는 잠시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가. 케이와 영적으로 연결되어있나봐.”

“아마도. 하지만 축사의 힘 때문에 나를 공격할수 없어,

대신 사츠키가 표적이 된 것 같아.”

“맞아. 저 사람에 관해서는 케이에게도 보이네.”

저는 머릿속에 움튼 생각을 그대로 꺼냈습니다.

“아마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 어쩌면 다른 영혼도 보이게 될지도 몰라.”

“응?”

“나도 사츠키와 같은 것을 보고 싶어. 저놈들로부터 사츠키를 보호하고 싶어.”

“안돼… 그 사람들의 원한이 가시지 않으면 저주는 끝나지 않아.

방해하면 끝나지 않을거야.”

“그래도… 음… 그래도 사츠키 옆에서 사츠키와 같은 생각을 하고…”

더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고마워.”

사츠키는 말했습니다.

그후 저는 신주의 지도 아래 한층 더 격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밤낮으로 목욕재계와 기도를 올리고,

신상에 배례하고, 신과의 관계를 강하게 가질 수 있도록 기원했습니다.

신이 말했습니다. 사츠키를 받쳐주라고.

제발 부탁드려요.

사츠키의 고통을 저에게도 나누어주세요.

설령 죽임당해도 불만은 없습니다.

사츠키가 살해당하는 횟수가 조금이라도 줄어들도록, 저를 제물 역에 보태주세요.

제발입니다. 제발요. 부탁드려요.

며칠이고 며칠이고 기도하고 있었어요.

계절은 흘러 이듬해 봄,

사츠키가 깨어나지 않게 된 것과 거의 동시에 저는 사츠키가 살해당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츠키나 형과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형은 고등학교 3학년, 사츠키는 유급해서 2학년이었습니다.

자나깨나 원령에게 계속 시달린 사츠키는 점점 감정이 없어진 것 처럼 보였습니다.

조용하게 소파나 침대에 앉아,

저와 이야기 하고 있을때도 건성으로 되는 일이 많아,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원령에게 당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깨닫지 못하는 중에도,

갑자기 실에 끊긴 것처럼 기절하기도 했어요.

사츠키는 원령과의 접촉을 정신만으로 행하며,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는 숨겨버리는 방법을 터득해나갔습니다.

사츠키의 마음은 서서히 영적인 세계만을 향하게 되어,

현실의 세계로부터 흥미를 잃어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인형처럼 그냥 앉아만 있던 사츠키는 어느날 갑자기 눈을 뜨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깨우려고 해도 사츠키는 깨어나지 않고,

요네즈선생님에게 진찰받은 결과 시즈할머니와 같은 상태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한데 정신적인 문제로 잠을 깨지 않게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키에씨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신주도 머리를 감싸쥐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성을 잃었지만, 어떤 예감에 이끌려 신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항상하고 있는것처럼 본당에서 기도하고 명상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강한 졸음이 느껴졌습니다.

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잠에 드니, 사츠키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제 바로 근처에 사츠키가 버티고 있습니다.

사츠키는 겁에 질려 떨고 있엇습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사츠키는 바로 가까이에 있는 저를 볼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츠키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고개는 움직이는데 손도 발도 가위에 눌린 듯 미동도 하지 않아,

그자리에 계속 서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윽고 사츠키가 히익하는 숨을 삼켰습니다.

사츠키가 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노인이 서있었습니다.

노인은 저를 한번 흘끗 보더니 사츠키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손에 든 낫을 사츠키의 어깨에 꽂았습니다.

“아아아아아!!!!”

사츠키가 고통으로 절규했어요.

찔린 어깨를 누르고 웅크리고 있습니다.

노인은 다시 사츠키의 등에 낫을 내려쳤습니다.

“싫어! ……아파! …아파… 으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츠키는 잠꼬대를 하는것처럼 사죄의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주저하지 않고 몇번이나 낫을 내리쳤습니다.

이게 원령을 마주한다는 것인가.

원령의 한을 풀기 위해 그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살해당해야한다.

그들의 원통함을 풀때까지, 그들의 직성이 풀릴때까지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

“사츠키!”

저는 사츠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우…케이……?”

목소리가 들렸을까요?

사츠키는 제 이름을 희미하게 불렀습니다.

“아파! …..아파! …..케이! ……도와줘…..”

집요하게 내리쳐지는 낫을 맞으며 사츠키는 절규했습니다.

그리고 노인은 사츠키의 목에 낫을 꽂아 사츠키를 절명시켰습니다.

그동안의 광란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남아 절규했습니다.

뭐야 이게!

이런 지독한 일이!

이럴수가!

저는 계속 소리쳤습니다.

숨이 차서 저는 씩씩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인이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피투성이로 쓰러지는 사츠키 곁에 선채 얼굴만 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히죽 웃었어요.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떨렸어요.

노인이 지닌 끝없는 악의가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일리 없는 악의는 왠지 검은 안개처럼 보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악의.

그 노인에게서는 악의밖에 느낄 수 없었어요.

사츠키에게, 나에게, 그리고 이 마을의 모든 것에 대한 적대심.

고통스럽게 찢어버린다는 의사가 노인의 미소에서 전해졌습니다.

저는 공포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다음 순간 신사 본당에서 깨어났습니다.


온몸에 흠뻑 땀이 흘렀고, 차가워진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어요.

너무 심한 악몽에 구역질이 나서 본당 안임에도 불구하고 뱃속에 있는 것을 토해냈습니다.

진정이 되자 신에게 용서를 빌며 뿜어낸 토사물을 말끔히 닦아냈습니다.

물걸레질을 하고 마른걸레질을 하고, 다른 더러운데가 있는지 보고,

괜찮은지 확인하고 나서, 다시 세수를 하고 코를 풀어 구토를 했던 여운을 몸에서 지웠습니다.

세면실에서 본당으로 돌아와, 본당 안에 언젠가 맡았던 향기가 감돌고 있는 것을 느꼈을 때,

아아, 내가 이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사츠키는 시즈할머니처럼 잠이 들었고, 저는 사츠키를 대신 지켜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사츠키가 죽는다며 다음에 소임을 이을 사람은 저라고 확신하게되었습니다.

저는 신상을 행해 배례하여 기도했습니다. 소원을 이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그리고 나서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병원으로 향한 것이 오후였고, 그때는 서쪽 하늘이 노을로 물들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사키에씨도 신주도 병원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신주에게 조금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위로 보아도 다음 차례는 저라고 확신하고 설명하자,

신주는 고개를 푹 떨구었습니다.

“그런… 그럼 사츠키는 이대로…”

사키에씨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제물이 정해졌다는 것이, 사츠키가 이렇게 죽을때까지 잠에 들어있는거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리도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합니다.

“모르겠어요. 그냥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저는 왠지 느꼈던 예감 같은 걸 말하려 했습니다.

다만 말을 잘 할 수 없어, 횡설수설하고 있었습니다.

“상황은 점점 변하고 있어요, 시즈할머니는 수명을 다하셔서 돌아가신 거라면,

사츠키는 이대로 수명까지 계속 잠들어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원령의 마음이 풀리지 않을 리 없을 거예요.”

만약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수십년이나 계속되는 제물이 될지도 모른다.

몇 명의 제물이 더 필요할까.

역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어요.

“맞아. 사츠키는 지친거야.

일어나서 우리를 상대하면서, 우리가 귀신의 기미를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견디는 것을.”

신주의 말에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츠키는 줄곧 현실과 영의 세계를 같이 보았어.

거기에 사츠키의 영혼은 고통 받고 있었고.

그것을 현실의 우리에게 계속 숨기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을거야.”

신은 저에게 사츠키를 받쳐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츠키가 자신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가 관측자가 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힘이 든 일인데,

우리 걱정까지 해야 하는 것은 사츠키에게 상당히 부담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츠키가 집중할 수 있도록 제가 그것을 보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합니다.

시즈할머니때의 사츠키의 역할.

제물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부 보는 역할.

그리고 만약 제물의 대체가 일어날 경우 다음의 제물이 되는 것.

그게 저에게 주어진 역할이었어요.

사츠키를 받쳐주라고 한 신의 뜻은, 저로 하여금 그것을 눈으로 보게 하는 것.

사츠키가 다치는 것을 줄이고 싶다는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유감스러웠지만, 그래도 사츠키의 정신적인 피로를 줄일 수 있다면,

제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무엇보다, 할머니를 지켜봤던 사츠키가 스스로 제물이 되는 것을 자청했다는 것.

그 용기에 저는 경외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정도의 괴로움에 스스로 뛰어든 사츠키.

그것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이 제물이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헌신이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츠키….”

사키에씨가 사츠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끝이 온다. 그때까지 힘내렴.”

신주도 사츠키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11화 최종화

그뒤로는 저도 사츠키도 힘들었습니다.

물론 사츠키가 몇백배는 더 고통스럽겠지만,

저도 잘 때마다 사츠키가 귀신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에 전혀 몸을 쉬게 하지 못하고,

수면으로 피로회복 등을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사츠키는 시즈할머니를 꿈에서 보고 있을때 며칠에 한번 씩이었지만,

저와 사츠키는 매일 원령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사츠키의 몸은 여전히 잠든 채 병원의 도움으로 보양되는 상태라 별 변화가 없었지만,

저는 눈에 띄게 말라 반년쯤 지났을 무렵에는,

스스로도 귀신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심각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눈가에 다크서클이 생기고, 뺨은 야위고,

몸무게는 20kg이상 빠지며 까칠까칠해졌습니다.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면 친구들이 정색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보였습니다.

맹렬한 폭력에 노출되는 사츠키를 보고 당황하기만 하던 초기와 달리,

어느정도 침착하게 사츠키가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된 덕분에 귀신의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츠키가 살해당하는데 익숙해졌다니,

자신이 참 냉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눈앞에 일어나는 사태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으니 싫든 좋든 순응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사츠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겁에 질려 떨면서 원령에게 당하고 있던 사츠키는, 언젠가부터는 정좌하여 원령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령이 나타나면 손을 짚고 머리를 숙여 말합니다.

“노여워 하시는게 당연합니다. 부디… 부디 용서해주세요.”

원령은 사츠키의 사죄따위는 개의치 않고 사츠키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사츠키는 원령에게 계속 사죄했습니다.

아픔에 부르짖으며, 고통에 떨면서,

그래도 원령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용서를 빌었고, 사츠키는 원령의 폭력을 참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런 사츠키를 보면서 필사적으로 원령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사츠키가 살해된 후에도, 원령에게 사죄를 거듭했습니다.

원령들 중 일부는 저를 한번 쳐다보고 사라지는 원령들도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그 노인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떠나는 귀신도 있었어요.

그리고 반년이 지났을 무렵, 사츠키를 죽이러 오는 원령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굴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귀신들이 매일 사츠키를 죽이러 오는데,

점차 어? 또 이 사람이야? 하는 식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진거죠.

그런 얼굴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다른 원혼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저는 그것을 신주와 사키에 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츠키…..”

사키에씨는 사츠키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힘내고 있구나. 훌륭해. 고맙다, 고마워.”

라며 울었습니다.

신주도 눈물을 흘리며, 사츠키의 머리를 쓰다듬고, 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케이타, 너도 힘들텐데, 고마워.”

그러면서 제 어깨를 어루만지며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 끝이 보여.

그런 희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집에서 형과 마주치면, 형이 어색해하며 저를 피했습니다.

원래 자신이 도와줘야하는데 스스로 거기서 도망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형에게 좋은 아침이라 말해도, 형은’어.. 좋은 아침’하고 얼굴도 보지 않고 대답할 뿐입니다.

저로서는 사츠키에 대한 마음은 형도 저와 같았을 거고,

대법회때 제가 여자 귀신에게 붙잡혔던 것이 원인이기 때문에 형이 도망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형의 마음은 착잡했던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형하고 제대로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러저러한 몇 달이 지났고,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사츠키를 죽이러 오는 원령이 10명 정도로 줄어들어있었습니다.

나머지 100명 이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원령 중에는 겸연쩍게 웃으며 딱 한 번 사츠키를 찬 후, 부끄럽다는 듯 사라진 아이도 있었습니다.

마을을 엄습하는 가공할 만한 원령의 안에는 다양한 인격이 모여있었습니다.

그 인격에 따라 원망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 구원의 단서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겨울 문턱에 다다랐을 무렵에 사츠키의 주위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전에 나타났다가 부끄럽다는 듯 사라졌던 아이의 영혼이,

조금 떨어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사츠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영혼은 여자아이로, 누더기 같은 기모노를 입은 5살 정도의 소녀였습니다.

머지않아 늘 사츠키를 죽이러 오는 그 노인의 영혼이 나타나 사츠키를 낫으로 찔렀습니다.

사츠키는 말없이 손을 짚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낫을 꽂을 때마다 괴로운 소리를 내뱉는 사츠키를, 그 소녀는 잠자코 보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소녀는 쭉 사츠키를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꿈속에서 사츠키를 마주칠때마다 그 소녀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의 위치가 서서히 사츠키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 몇미터 남지 않은 곳까지 와서 더 이상은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저는 소녀에게 호소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줬으면 좋겠어.

누나가 괴롭힘 당하는 것은 고통스러워.

내가 대신 사과할게 모두에게 전해줘.

무슨 일이든 할 테니 사츠키를 용서해달라고 전해줘.

소녀는 제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사츠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뒤에서 손이 휘감아졌습니다.

목을 감아온 것은 잊을 수 없는 그 손이었어요.

새하얀 피부에 여럿 상처가 난 피투성이의 팔뚝.

머리 바로 뒤에 나타난 기척에 몸이 얼었습니다.

천천히 고개만 돌려보니 거기에 그 여자의 얼굴이 있었어요.

“오오오오루오옷우우우우우우우에에아에으으으으….!”

귓가에 쿵쿵 울리는 그 소리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어요.

온몸의 혈관에서 피가 사라진 느낌.

여자의 영혼이 저를 사로잡고 으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 여자는 사츠키의 품으로 비틀비틀 걸어가 손을 짚고 머리를 숙이는 사츠키의 머리를 짓밟았습니다.

사츠키를 죽인 여자는 제를 다시 돌아보고, 뭔가 그르렁 그리며 사라졌습니다.

“용서해주세요! …….. 용서해주세요! ……… 부탁드립니다!”

저는 두려움에 떨면서 계속 소리쳤어요.

딱딱 이가 부딪혀 말을 잘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발목을 찌르는 심한 통증으로 깨어난 참이었습니다.

잠옷을 벗으니 발목에 멍이 들었습니다.

경고,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밤, 사츠키를 바라보는 소녀 곁에 남자가 있었어요.

그리고 또 한명의 성인이 떨어진 곳에 서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성인 남자 같은데 얼굴은 안보여요.

멀리서 팔짱을 끼고 사츠키를 보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 사츠키를 보고 있습니다.

그날 사츠키를 죽이러 온 것은 또 그 여자였습니다.

여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사츠키의 머리를 잡아 얼굴을 들게 하고는 그대로 목을 비틀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한동안 그 여자가 나타날 확률이 점점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자주 나타나는 것은 그 여자와 노인 두 사람.

사츠키가 살해되는 것을 지켜보는 인영도 나날이 늘어갔고,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안개 같은 사람의 그림자는 수십개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안개 같은 사람의 그림자 무리에서 염불이 들려왔습니다.

나무아미타나무아미타….라는 염불을 누군가 외우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염불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저는 그것 또한 구원의 조짐이라고 느꼈습니다.

그것을 주지스님에게 전하기 위해, 신주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주지스님이 연락을 받고 사츠키의 병실에 와주었습니다.

그떄까지 주지스님은 몇번인가 사츠키의 병문안을 와주었지만,

저와 마주친 적은 없었기에, 이 반년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변한 것을 보고 놀라고 있었습니다.

“케이타 너 괜찮니?

네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시노미야님으로부터 들었지만,

이대로는 네가 대신하는것과 뭐가 다른지.”

저는 괜찮다고 대답하고 최근 원령의 변화를 주지스님에게 설명했습니다.

염불에 대한 것까지 이야기를 마치자 주지스님은 으음하고 소리를 내며 깨끗하게 면도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어려워… 어렵구나… 사츠키.”

그러면서 사츠키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리고 케이타, 자네도 대단히 수고가 많네.

힘들겠지만, 귀한 임무를 하는 자네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지네.”

제 눈을 똑바로 보고 그렇게 말해주더군요.

저는 겸연쩍어서 고개를 살짝 숙였습니다.

“그건 그렇고… 말도 안 되는 괴물인줄 알았는데, 그 안에 연민을 느끼는 자가 있다니.

원령이 되었지만 다시 사츠키를 위해 부처님의 구제를 비는가.”

주지스님은 신주에게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시노미야님, 저기… 괜찮다면 경을 올릴 수 있을까요.”

주지 스님은 사복을 입고 있었는데, 품에서 염주를 꺼냈습니다.

“사츠키를 위해 염불을 외는 그 영혼을 위해 저도 경을 올리고 싶습니다.”

신주가 흔쾌히 응하자 주지스님은 두손을 모아 조용히 경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대법회에서처럼 격한 인상이 아니라, 조용히 가슴에 와닿는 듯한 상냥함을 느낀 불경이었어요.


그날 밤, 그 여자가 사츠키를 죽이러 왔을 때도 염불이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가 낮의 주지스님과 같은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것을 깨닫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여자는 약간 어리둥절하며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짜증을 내며 거칠게 사츠키의 목을 비틀었습니다.

노인의 영혼과 번갈아 가며 나타난 그 여자의 영혼은 이윽고 사츠키를 죽이는 일을 어딘지 담담하게 행하게 되었습니다.

도망치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그저 버티는 사츠키를 괴롭히는데 싫증이 난 것처럼 보였어요.

맹렬히 사츠키를 괴롭히는 노인과 달리, 나타나서는 별 흥미도 없다는 듯 사츠키의 목을 비틀고 사라졌습니다.

한 번은, 잠시 사츠키를 내려보더니 손을 짚고 엎드리는 사츠키의 머리를 들어올리고 사츠키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그리고는 사츠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더니 그대로 사츠키의 목을 비틀었습니다.

그후로, 여자의 영혼은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은 1인.

끝까지 사츠키를 괴롭히는 것을 멈추지 않는 노인의 영혼은,

자신 혼자 남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이, 지금까지보더 더 사츠키를 괴롭혔습니다.

그래도 사츠키는 견디며 계속 사과했습니다.

저도 똑같이 사과를 계속했습니다.

그래도 사츠키를 죽이고 웃는 노인에게서 악의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사츠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점점 가혹해져,

사츠키가 절명한 후에도 시신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괴롭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언제나처럼 노인이 낫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사츠키는 엎드려 사죄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츠키와 노인 사이에 끼어들듯이, 늘 사츠키를 관찰하던 소녀의 혼령이 섰습니다.

말없이 노인을 바라고 있습니다.

노인은 당황하며 그 자리에서 낫을 치켜들었어요.

“으씨…. 고 말야! .... 게도….해서…!!”

노인이 무슨 말인가 고함을 지르고 있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소녀의 옆에서 사츠키를 보고 있던 남자 아이의 영혼도 소녀의 곁에 섰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보던 안개 같은 무리 중에서 한 사람,

또 한사람과 성인의 혼령이 걸어나와 소녀의 편에 섰습니다.

걸어나온 영혼의 얼굴은 또렷이 보였습니다.

그 안에 할머니의 혼령이 있어 손을 모으고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인가….!

복받치는 생각에 온몸이 뜨거워졌어요.

“이제 됐나.”

누군가 그랬어요.

명료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됐지.”

“이제 됐지.”

“이제 됐지.”

“충분하다 싶다.”

“이제 됐지.”

“용서해버려.”

“우리도 나빴다.”

“가엾게도.”

연달아 그런 소리가 들렸어요.

목소리도 안개 너머로 들려오는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노인은 기가 눌린 듯 뒷걸음질 치더니 낫을 휘두르며 악을 썼어요.

“….라고! …아아!?....”

노인은 격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됐지.”

“이제 됐지.”

“이제 됐지.”

안개의 소리도 멎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 였다는게…!! ….이라고!!”

노인은 절규를 남기고 사라졌어요.


그리고 저는 눈을 떴습니다.

역할이 생긴 후 처음으로, 사츠키가 죽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을 떴다.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실감이 나며 기쁨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귀신들은 제각기 “이제 됐다”고 말했어요.

사츠키는 마침내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게 꿈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남은 1인.

그 노인의 영혼은 사츠키를 용서해줄까.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은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제 그 노인만 남았으니까.

혹시 지금 그만둬도 더 이상 괴이는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그 다음은 사츠키가 언제 깨어나느냐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노인의 혼이 나타났습니다.

노인 뒤에 여럿의 영혼이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검은 안개 같은 그 집단을 바라보니 옛날 옷이 아닌 현대 의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는 얼굴도 있었어요.

저건 사냥회 사람이다.

죽은 일가 사람도 있다.

교정에서 움직이는 시체가 된 ◯◯선생님도.

노인이 데려온 것은 일련의 괴이함으로 숨진 수십명의 마을 사람들의 영이었습니다.

노인의 영혼은 사츠키 앞에 주민들의 영혼을 늘어놓고 히죽히죽 웃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사츠키를 사이에 둔듯 양옆에 소녀와 소년의 영혼이 서있었습니다.

어른들의 영혼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사람들의 영혼은 사츠키를 원망하는 듯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원령에게 살해당한 그들 또한 원령이 된 것 같았습니다.

주민들의 영혼은 무엇인가 중얼중얼거리며 사츠키쪽으로 걸어옵니다.

사츠키는 정좌한 채 손을 짚고 말했습니다.

“돌아가신 여러분, 부디 편히… 편히 잠드십시오… 부디…”

사츠키의 간청에 화답하듯 주민 집단에서 몸집이 작은 사람이 걸어나왔습니다.

“할머니.”

사츠키가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말을 흘렸습니다.

집단에서 나온 것은 시즈할머니의 영혼이었습니다.

주민들의 영혼은 멈춰섰습니다.

변함없이 원망스러운 얼굴로 사츠키를 보고 있습니다.

사츠키와 주민들 사이에 선 시즈할머니의 영이 주민들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두 손을 잡고 90도 가까이 허리를 굽히는 큰 절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주춤하며 몸부림쳤습니다.

“할머니…!”

사츠키는 입에 손을 대며 오열을 터트렸습니다.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시즈할머니는 죽어서도 사츠키를 지켜주고 있다.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넘쳤습니다.

시즈할머니는 고개를 숙인채 움직이지 않았어요.

주민들의 영혼은 하나 또 하나 흔들거리며 사라져갔습니다.

이윽고 모두 사라지자 시즈할머니의 영혼은 고개를 들어 사츠키를 돌아보고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가지마…! 할머니…”

사츠키가 흐느끼는 가운데, 홀로 남은 노인의 영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피해자인 원령들도, 그 원령에게 죽임을 당한 현대의 주민들도 모두 사츠키를 용서했습니다.

노인 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더 이상 집합체로서의 원망은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숙인 채 낫을 움켜쥐고 떨고 있었습니다.

사츠키를 죽일까하는 생각에, 저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이윽고 노인은 힘없이 낫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사츠키에게 아까 시즈할머니와 같이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자세 그대로 노인의 영혼은 사라졌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츠키를 지켜보던 영들도 사라져 있었어요.

옆에 서있던 소녀의 혼령이 사츠키의 머리를 쓰다듬고 사라졌습니다.

남자아이도 소녀를 쫓듯 사라졌어요.

"........"

정적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 사츠키는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와아아아아아아아!!!!”

“소리내어 울었어요.”

엄청난 눈물 때문에 눈에서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누구에게 거리낄 것도 없는 큰 소리로 아이처럼 흐느끼는 사츠키를 보면서 저도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계속 해왔던 일이 끝났어.

용서를 받았다고.

깊은 기쁨과 안도,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폭발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엉엉 울었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울다지쳐 사츠키가 잠에 빠졌을 때 저는 눈을 떴습니다.

잠에서 깬 저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츠키가 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병원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지만, 병원의 현관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병동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실의 사츠키는 아직 잠든 채였습니다.

감긴 눈동자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러 선을 긋고 있엇어요.

저는 그 자는 얼굴을 보고 후 하고 숨을 내쉬고는 의자를 끌어당겨 사츠키 곁에 앉았습니다.

그때, 병실에 달콤한 향기가 감돌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사츠키가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사츠키가 눈을 뜬 것은 오후가 되어서였습니다.

아침에 문병 온 사키에씨에게 어젯밤의 일을 전하자 사키에씨도 울며 기뻐했습니다.

신주에게 연락해 모두가 병실에서 사츠키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젯밤의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 신주도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무엇보다도 시즈할머니가 사츠키를 지켜주신 것이 기뻤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겨울의 햇살이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사츠키가 눈을 떴습니다.

“엄마….”

잠든 사츠키가 중얼 거렸습니다.

모두 사츠키의 곁으로 달려가 사츠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닫혀있는 사츠키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더니 천천히 열렸습니다.

“사츠키!”

사키에씨가 사츠키를 감싸듯 이름을 불렀습니다.

“엄마… 끝났어…”

사츠키는 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츠키…아아… 사츠키…. 어서와… 사츠키….”

사키에씨는 눈물로 흐느끼면서 사츠키의 이마와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사츠키.”

신주가 사츠키 곁에 허리를 굽혀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고맙다. 사츠키. 잘 해냈구나.”

“숙부… 할머니가…”

“아아, 알고 있다. 케이타한테 들었어. 할머니가 지켜주셨구나.”

“케이…..”

사츠키에게 불려 저도 사츠키가 볼 수 있도록 다가왔습니다.

후후, 하고 사츠키는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너덜너덜…해졌네….”

완전히 변해버린 제 모습에 사츠키는 놀란 것 같았습니다.

“계속… 봐줬네…”

“응….”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저는 울어버렸습니다.

“후후….”

사츠키는 다시 조금 웃었습니다.

“케이… 고마워.”

그리고, 사츠키는 수일의 재활을 거쳐 퇴원했습니다.

온 몸의 근육이 쇠약해져 휠체어를 타고 퇴원한 사츠키는 그로부터 천천히 1년에 걸쳐 건강한 몸을 되찾아갔습니다.

저 역시 귀신 같은 상태에서 사람다운 외모로 돌아갔습니다.

여기부터는 사족이 되기 때문에 대충 적습니다만,

원령이 사라진 마을은 이전보다 더욱 활기를 띠어,

형은 카나모리 선배와 함께 도쿄에 가서 밴드로 성공하는 꿈을 쫓았고,

저는 사츠키와 결혼해 5명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쇼와시대 말엽(1980년대 말),

이 마을을 덮친 괴이는 지금은 전래동화처럼 이야기될 뿐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무섭게 하기 위해서 말합니다.

“착하게 굴지 않으면 목매달아 죽은 귀신이 온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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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사고물건

연말이 다가온 12월 어느 날,

누나의 지령을 받은 나는 오오테마치에 있는 임대 맨션의 방 문 앞에 있었다.

부동산을 넉넉하게 취급하는 누나네 회사에서 관리하는 매물로 지금은 세입자가 없는 빈집이다.

맡아두었던 열쇠를 사용하여 현관을 연다.

이제 오후 2시인데도 날은 벌써 기울기 시작했고 상가 건물로 둘러싸인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현관에서 안을 내다봐도 방안에 비치는 빛은 없어 낮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흐음"

한숨이라고도 할 수 있는 끄덕임을 한번.

나는 마음을 먹고 신발을 벗어 방에 들어갔다.

있는걸까.

이 방에.

목을 매어 죽었다는 전 거주인의 영이.


현관에 있는 형광등 스위치를 누른다.

불은 안 켜져.

레버가 내려가 있겠지.

세탁기 거치장 위에 레버를 찾아 스위치를 올린다.

현관의 등에 불이 들어왔다.

방의 배치는 제법 넓고, 현관에서 이어지는 짧은 복도 끝에 거실이,

그 앞에 작은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나는 닥치는 대로 문을 열고 방마다 불을 켜고 다녔다.

어두컴컴하던 실내에 인공의 불빛이 널리 퍼졌다.

“최소한 봄까지는 살아야 된다. 그 방에는 악령이 없어. 뭐가 보이고 들려도 무시하면 되니까.”

누나가 그런 말을 해서 나는 또 그런 줄 알았다.

누나가 맡은 회사는 임대물건 중개를 하는 부동산회사로 대형 임대정보사이트의 물건부터

동료들끼리만 정보가 나도는 로컬물건까지 엄청난 수를 다루고 있다.

업계적으로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사고물건 취급이고 자살자가 발생한 방의 경우 다음 세입자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야 한다.

(일본은 부동산 계약시, 사람이 죽은 곳은 반드시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부동산 물건을 사고 물건이라고 부릅니다.)

그 뒤치다꺼리도 귀찮고 금액적으로도 당연히 싸지므로,

누나의 회사로서는 누군가 편리한 녀석이 어느 정도 살게 해,

설명 의무가 필요 없는 상태로 한 다음 통상적인 물건으로 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다.

지극히 보통의 회사원으로 귀신을 본적도 없고,

사고 물건에 살아도 무섭다고 밖에 느끼지 않는 제로 영감의 내가,

수개월 동안 정착한다.

당연히 집세는 내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정기적으로 이사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도쿄임에도 불구하고 집세 0원이라고 하는 기적을 구현하고 있다.

원래 자신의 짐이라고는 트렁크 하나면 충분할 정도밖에 없는 자칭 미니멀리스트다.

필요최소한의 세탁기랑 냉장고랑 텔레비전으로만 나의 이사는 끝난다.

두렵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편안한 것.

제로 영감을 발휘해 심령적인 것은 모두 무시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없이 사고 물건을 처리해 왔다.

내가 생각해도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누나도 누나 나름 나도 나 나름,

서로의 이익이 완벽하게 교차하는 윈윈을 구축하고 있었다.

일인 가구 전문 이사업체가 세탁기와 냉장고, 그리고 TV와 상자 몇 개라는 내 짐을 단숨에 방으로 실어 나른다.

몇 분 만에 반입작업이 끝났다.

이것밖에 없으니 당연히 이사비도 저렴하지.

스스로도 반입할 수 없는 양은 아니지만 서른 살이 될까 하는 이 나이에 막노동은 피하고 싶다.

나는 머리를 쓰는 쪽이다.

이삿짐 업자 형에게 대금과 캔 커피를 건네주고 배웅한다.

누나에게 이사를 완료했다는 내용을 보내고 다시 방안을 둘러본다.

넓다.

미니멀리스트 하면 평판은 좋지만 요점은 가구가 아무것도 없다.

텔레비전과 이불밖에 없는 방에 책상 다리를 하고 앉는다.

벽에 등을 기대고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켠다.

저녁 뉴스 프로그램이 막 시작되었다.

웅웅웅하는 소리가 나고 휴대폰이 울렸다.

누나로부터의 답신은 “수고했다. 잘 부탁해”로 간소했다.

“……”

간소를 넘어서 공허하다.

좀더 있어도 좋을 텐데.

나이 많은 동생을 메세지로만 이리저리 휘둘러 놓고 위로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는 것일까.

“……”

기분이 나지 않는 것이겠지.

요 몇 년간 누나의 그런 상냥함은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에는 여러모로 보살펴 주는 좋은 누나였지만,

어른이 됨에 따라 점점 세심함이나 배려심이 없어져 간 것 같다.

뭐 우리 세대에서는 최고참이며 본가에 돌아가면 차기 당주로서 친족의 탑에 서는 분이므로,

이쪽으로서도 불평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도쿄에 있는 동안은 얼마 안되는 남매로서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박스에서 목욕 타월을 꺼내 욕실에 간다.

바디워시 종류는 버리고 왔으니 사러 가야겠다.

그러나 오늘은 지쳤다.

짐이 적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이삿짐을 준비하는 일, 수속도 다 하는 것은 고생이었다.

샤워만 하고 술 먹고 자자.

그렇게 결정했다.

욕실에서 나오니 텔레비전이 꺼져 있었다.

켠 채로 씻으러 간 줄 알았는데.

뭐 됐어..

이해 안 되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어차피 생각해봤자 두려울 뿐이야.

박스에서 잔과 잭 다니엘 병을 꺼낸다.

잔을 가볍게 헹구어 물기를 빼고 위스키를 따른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술이지만 이것이 가장 맛있는 것이다.

품을 들이지 않고 가장 짧은 시간에 위스키를 맛본다.

마시는 법까지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버린 것은 타고난 귀찮음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스스로는 마음에 든다.

텔레비전 이외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바닥에 위스키와 잔을 놓고 책상 다리로 즐긴다.

시노미야 소이치로 29살

어른인 체하지만 누나의 잔심부름에 쓰이는 한심한 남자다.

철커덕 하고 현관에서 소리가 났다.

신문함에 뭔가가 담긴 것 같다.

확인 따윈 안 해.

무언가가 있으면 그건 좋지 않은 법이야.

영적인 것이 아니라면 내일 아침에 확인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안들리는 것으로 한다.

톡톡톡 소리가 커진 것 같아

텔레비전의 볼륨을 올린다.

쾅쾅 창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이거 이제 무시할래

정신력의 문제다.

무시당하는 것은 사람이나 영혼이나 마찬가지로 괴로운 법이다.

이윽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내가 이긴 것 같다.

첫날부터 이래서는 앞날이 걱정된다.


다음날도 괴현상 같은 일은 계속 되었지만 모두 무시했다.

어떤 때는 머리를 감는 동안 등에 닿는 손가락 끝의 감각이 있는가 하면,

화장실 중에 방안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거나,

TV가 집요하게 꺼지거나,

불이 켜졌다 꺼졌다가,

현관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면 누군가가 안에서 막고 있는 것처럼 문이 무겁거나,

방구석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기도 했지만 모두 무시했다.

모든 것은 마음 때문이며 어떻게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노리고 있지만 나는 영감제로,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이래저래 있는 것 같은 영혼과 나의 공방은 계속되고,

이윽고 내가 승리하게 되지만, 마지막의 이것은 위험할 수 있었다.

일을 마친 나는 회사에서 출퇴근 자전거를 마음껏 몰며 집으로 돌아왔다.

비가 내린 지 몇 분이었지만 유감스럽게 빗줄기가 강해 널어놓은 빨래가 비의 먹이가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주의가 부족하게도 불을 켜지 않고 서둘러 방안을 가로질러 베란다로 나간다.

아직 해가 채 지지 않아 어둑어둑한 날이어서도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어두움이었다.

서둘러 빨래를 걷어 들이고 있는데 널린 티셔츠 너머로 기척이 났다.

눈앞에 티셔츠가 펼쳐져 널려 있어 시야의 절반은 티셔츠다.

그 티셔츠 너머 떨어뜨린 시선 끝에 발이 보였다.

여자의 맨발

빨간 페디큐어가 칠해져 있다.

비가 내리는 어둑어둑한 베란다.

비에 젖은 여자의 다리는 싸늘하고 애처로움을 느끼게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나는 그 티셔츠는 무시하고 뒤돌아,

티셔츠 쪽을 보지 않은 채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큼의 빨래를 걷어들였다.

그날 밤 여자의 흐느낌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던 것 같지만 무시했다.

다음날부터는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러저러해서 봄을 맞이했다.

우우웅 소리가 나며 핸드폰이 울렸다.

누나의 메세지는 “수고했어! 다음은 진보쵸니까 짐 싸둬(^_-)-☆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모티콘으로 비위를 맞추는 정도라면 다음 물건은 굉장할 것이다.




시노미야 신사의 부적

시노미야 신사의 부적이라고 하면,

어느 이야기에서는 약간의 레어 아이템으로서 알려져 있다.

큐슈의 시골에 있는 낡은 신사의 부적으로,

오컬트 일대에서 그다지 지명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만 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돌고 있는 것은 사무소에서 판매하고 있는 800엔짜리로,

효과에 관해서도 효험이 있으나, 극히 일반적인 것이다.

어느 이야기에서 귀중품으로서 애용되고 있는 것은

신주인 시노미야 케이타가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만든 제품으로,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보다도 수수하고 무미건조한 장식이면서 효과의 정도는 보증되어 있다.

귀신에 홀리기 쉬운 등 영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백만을 내놓아도 구입하고 싶은 고마운 부적이다.

그리고 우리 남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신주이자

시노미야 가문의 현 당주인 시노미야 케이타가 직접 부탁하여

아내 시노미야 사츠키가 만들어 낸 10개의 부적 중 5개다.

부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이동하는 신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파격적인 영험함이 깃든다고 하는 그 부적은,

평상시에는 시노미야 신사의 본전에 보관되어 있어 특수한 사정으로 반출되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그만큼 강력한 부적이다.

일찌기 일본 유수한 영력을 자칭하는 영능력자·가노 코우메이(본명·사사키 유이치)가 극비로 빌리러 온 적이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도쿄의 고택에서 별안간 귀물이 나와 액막이을 의뢰받았는데,

그 불귀에 들린 악령이 강력해서 좀처럼 제거할 수가 없다.

거기서 시노미야 신사의 부적을 빌려 가서 액막이 의식의 요체로 삼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의식은 감쪽같이 성공했다.

그런데 가노는 언제까지나 부적을 반납하러 오지 않는다.

부적의 강력한 힘에 취해 부적을 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탐욕스러운 가노는 차례차례로 의뢰를 받아 대호저택을 지을 정도로 벌었다.

1년이 지났을 무렵, 시노미야 사츠키는 카노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이 부적을 돌려주러 오지 않아 되찾으러 가겠다고 신께서 말씀하시니,

아무쪼록 큰일이 나기 전에 돌려주십시오."

그 편지를 읽은 가노는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귀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가노 본인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가노에게 있어서 굉장히 무서운 일이 연달아 일어난 것 같아,

3일 지나지 않아 시노미야 신사에 부적을 돌려주러 왔다.

그때에 굉장한 액수의 시주를 하고 간 것 같아,

덕분에 시노미야 신사의 가계는 꽤 풍족해졌다던가.


그런 강력한 부적을 어렸을 때부터 지니고 있던 우리 남매는

마치 신을 모시고 다니는 것과 같아서,

사사건건 나쁜 영혼이 찾아왔다가는 멋대로 소멸하는 이상한 광경을 보고 자랐다.

무엇보다 장남인 소이치로와 차남인 아키라는 영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단순한 부적이라고 밖에 인식하고 있지 않지만.

본전에 안치할 만한 소중한 물건들을 가지고 다녀도 되느냐고 어머니께 물었더니,

“이곳저곳에 다닐 수 있어 신께서도 즐기고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고 하셨다.


부적을 가지고 심령스팟에 가려면 큰일이다.

≪최악터널≫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심령스팟에 갔을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동창생 몇 명과 자전거를 타고 최악터널로 갔다.

터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터널 안에서 아비규환의 비명이 들리더니 바닷물이 빠지듯 작아지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부적에 겁을 먹고 도망쳤거나 부적의 힘에 의해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울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겁을 먹었지만,

나는 속으로 가만히 영혼무리에게 사과하고 돌아왔다.

심령명소가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 몇 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최악 터널 소문은 부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영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것 같아.


가끔 신사나 절에 가면 부적이 기쁜 듯이 떨릴 때가 있다.

우리 신은 다른 신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새로운 고장에 가면 적극적으로 사찰을 둘러보고 있다.

그런 우리 남매는 영적인 위기를 맞은 적이 전혀 없냐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 신은 상당한 스파르타여서 어릴 적부터 훈련을 시키고 있다.

나쁜 영혼이 다가오고, 평상시 같으면 제멋대로 소멸하는데 어째서인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어쩐지, 아 이번에는 부적은 도와 주지 않는구나, 라고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다, 스스로 어떻게든 하라는 것이므로 도망치든지 액막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영혼을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런 일을 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 남매는 어른이 될 무렵에는 저마다 나름대로 영혼에 대한 요령을 터득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에 스스로 대처하게 되어,

어느덧 부적이 자동적으로 지켜지는 일은 없어졌다.

덧붙여서 형과 아우는 영감이 없는 서투른 콤비이므로 스파르타 교육과는 무관했다.

지금도 몸에서 떼지 않고 지니고 있지만 극히 개인적인 경우,

요컨대 애인을 만날 때는 집에 두고 오곤 한다.

역시 신의 앞에서 부비부비하는 것은 주눅이 든다.

부끄러운 것이다.


이동하는 신사와 같다, 라고 해도 부적은 부적.

본전에 있는 신이 본체이며,

부적에 담겨져 있는 신의 힘은 약간 나누어 진 정도의 분신 같은 것인 것 같다.

나는 은밀히 sd화된 쁘띠 신 같은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본전의 신이 아니면 대응할 수 없는 강력한 영혼과 마주쳤을 때에는 부적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고,

도망가라고 머릿속에 충동이 일어난다.

작은 신이 머리 주위를 날아다니며 초조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어떤 때는 강력한 악령으로부터 도망치면서도 끝내 도망치지 않고,

악령을 신사로 유인하면서 휴대폰으로 어머니에게 연락하고,

반대로 악령에게 매복하는 좋은 모습을 연출했다.

나중에 혼이 많이 났지만 나의 적지 않은 무용전 속에서도 특별한 빛을 지니고 가슴에 새겨져 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나는 시노미야 미나즈키

쌍둥이 동생인 아카츠키가 영감이 거의 제로인 겁쟁이여서 2인분의 고생을 하며 자란 강인한 사람이다.

동생의 어깨에 영이 타고 돌아오면 대개 내가 액막이했던 것이다.

조금은 감사받았으면 좋겠다.

남동생도 부적을 가지고 있는데, 웬일인지 남동생 근처의 영혼은 방치되어 있는 것이 많다.

나의 교육을 위해서라고 부모님은 말씀하셨지만, 우리 신께서도 어지간히 못살게 구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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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인 야코우님과, 번역인 사서A만 남겨주시면 자유롭게 퍼가셔도 됩니다.

영상 제작은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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