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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
캐나다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죽는 곳이다보니까여기도 이런저런 괴담이 많아서 들려주려고 왔어한국 귀신얘기에 비해 많이 시시할 수 있음 주의...ㅜ ----- [첫번째 직장] 1. 5-7세 정도의 여자아이 여기는 대도시 근교 아주 조그만 시골마을의 요양병원이었는데작은 동네다보니까 여기서만 몇십년을 일한 간병인들이 정말 많았어제일 신입(?)이 막 7-8년차고 그랬어암튼 오래 일하신 간병인 이모님들이 최고로 많이 목격하셨고간혹 환자 본인이나 환자 방문하러 오신 환자가족들도목격사례가 있으심(꼬마애 혼자 놀고있던데 누구집 아이에요? 나이는 5-7세 정도로 보이고누구는 반바지라 그러고 누구는 원피스 입고 있었다고 그러곸ㅋㅋ그냥 공통점은 어린 여자애기다 요거 뿐인데이 여자아이가 나오면 ..
1 이름 : 이름없음 2018/02/09 02:06:56 ID : unA4ZfU40rg 난 기도원에 다녀왔던 사람이다. 주작이라고 하면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믿어줬음 좋겠다. 난 2009년 중2의 나이로 기도원에 들어갔다. 억지로 들어간거나 다름없지. 지역도 모르고 그냥 차에 짐짝 싣듯이 태워져 절망에 빠져 기도원에 들어갔어. 가족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나는 어쩐지 기독교에 반감을 갖게 되었어. 주일마다 교회에 끌려가는 개같은 생활. 형제들과 부모님은 내게 신앙을 강요했고 초등학교땐 어찌저찌 넘어갔으나 중학교땐 머리가 좀 커서 정말 싫더라고. 친구들과의 비행으로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다가 중2때 사고를 쳤어. 선배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댕기다가 물건 하나를 깨부쉈어. 아마 분재같은 거 였을거야...
777불륜당하고 이혼이 성립됐는데, 체험담을 좀 적어도 되나요?781 名前:777트립 테스트785그럼 좀 실례합니다…메모장에 정리해서 투하.나 27세아내 27세불륜상대 30세 (미혼)아이는 없음.맞벌이내 연봉 700~800만 정도아내의 연봉 400~500만 정도대학시절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사귀기 시작하고, 서로의 취직과 함께 결혼.아이를 좋아해서, 나로서는 바로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일하고 싶다는 아내의 희망으로 아이는 잠시동안 놓지 않기로 했다.기준은 대략 30세 정도로 한다는 약속이었다.아내는, 뭐, 푹 빠졌었으니 색안경이 들어있는지도 모르지만 상당한 미인.약간 날카로운 인상이라서 쿨 뷰티 같은 느낌.성격도 약간 날카로운 편.대학시절에는 무척 인기가 좋았지만, 왜인지 나랑 사귀게 되어서 그대로 결혼..
2주전 현재 사는 집에 이사를 왔다.이건 이전에 살던 집에 관한 이야기다.5 호오...계속 해봐.7 새벽 3시쯤 되면 현관 문에 달린 신문 투입구 뚜껑이 달칵하고 열린다.9 열린 채 한동안 조용하다가, 잊어버렸을 무렵 덜컹하고 닫힌다.10 신문 배달원이겠지.12 그냥 잠결에 잘못 들은 거 아냐?13 커버가 붙어 있기 때문에 이쪽에서는 저쪽 상태를 확인할 수 없지만.1시간쯤 지나면 덜컹하고 닫힌다. 이런 패턴.15 >>10>>12 아니, 그런 게 아냐.신문 배달원은 시끄러울 정도로 발소리내면서 오는데,그 녀석은 아무 소리도 안내.17 문안쪽에 투입구를 가리는 커버 안 붙어 있어?그거 붙어있으면 안쪽이 안보일텐데?20 그래서 결국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거야?21 >>17 그 말대로야. 그래서 방심하고 있었다..
괴담/공포/도시전설 2010.05.01 21:161.일본 어디를 가던지 그 인근에는 반드시 신사나 절이 있다. 그리고 개중에는 사람들에게 잊혀져 방치된 곳도 적지 않다.보통 일본인이라면 그 같이 버려진 신사나 절이 있으면 절대 가까이 가지 않는다. 일본인 특유의 종교관에 의한「외경심」이 본능적으로 접근을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일본에서의 생활이 오래되지 않은 한국인들의 경우는 다르다. 신사에 대한 거부감은 있을지언정 외경심이나 존경의 마음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에 대한 마인드 역시, 조선민족의 경우 단일민족이면서도「민족 신」을 갖고 있지 않은 매우 독특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때로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되는 결계를 가진 신사의 경내를 모르거나 괜한 호기심으로 범했다가 천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연휴 끝물이라 이제 쉴 날도 없을 것같아서방 정리하고 청소하다가 대학교때 썼던 다이어리를 발견했어읽다보니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 대학친구들이랑 얘기하다가 기록용으로 여기에도 같이 공유해봄 여기서만 봐줘!*우리 학교엔 큰 호수가 있었어호수가 있는 모든 학교가 그렇듯이,호수에 대한 여러 괴담이 있었지누가 빠져죽었다던가?누가 애인과 싸우다가 빠져죽었다던가?시시한 괴담으론 뭐 호수에 사는 오리가 다 총장 재산이라 절대 해치면 안된다 , 오리를 해치면 오리가 복수해서 그 학기 학점을 망치게 된다 그런 괴담이 있었어그 호수가 얼마나 깊었는지 물어보면난 대답할 수가 없어깊은 물속은 쳐다보기가 무섭거든신입생 시절엔, 호수가 그저 아름다웠어동기들이랑 호숫가에 앉아서 배달음식 먹고커피 마시고그 호수 위를 그림처럼 떠다니는 ..
디미토리 맨날 눈팅만 하다가수원 이사와서 살던 집 생각나서 소소하게 풀어볼게.9살에서 10살 넘어가는 시기에 IMF로 가세가 기울면서구리에서 수원으로 이사를 왔어.아파트 살다가 주택으로 가는거라 어린마음에 낯설었던 기분 생생하네그 주택은 수원역 뒷편에 ㄱ으로 시작하는 동네에 있는 집이었어.집 위치도 상당히 특이했는데 길 걷다보면 옆에 좁고 막다른 골목있고 골목 끝 양쪽으로 다세대집 대문 두개가 있었음.그 골목 양옆으로 조성해놓은 조경들도 뭔가 산뜻해 보이지 않고, 햇빛이 안들어와서 그런가 어둡고 음침해 보였지.우리집은 대문 둘중 오른쪽집 1층이고 2층은 주인집.방 두칸에 거실, 주방 딸린 생각보다 큰 다세대주택이었는데햇빛은 거의 안들어오고 뒷마당에 작은 밭이 깔려있어서 어린 내가 보아도 음산해보였어.집 ..
탈북자 이춘구 씨가 2001년에 작성한 글강냉이를 바꾸다가 총살당한 제철소 간부들나는 북한을 脫北(탈북)해,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에 귀순한 이춘구이며, 나이는 35세, 고향은 황해북도 황주군이다.귀순하기 전 내가 북한에서 겪었던 굶주림과 허덕임은 이제는 잊혀지는 듯하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은 북한 황해북도 송림시에서 1998년 8월에 일어난 황해제철소(황해제철연합기업소) 노동자들의 폭동사건이다. 이 폭동을 진압하는 북한당국의 非인간적인 만행은, 세월이 흘러가도 역사의 갈피 속에 영원히 피로 얼룩져 있을 것이다.1998년 8월 초에 나는 혹심한 식량난을 이기기 힘이 들어 송림시에 살고 있는 이모네 집에 거처하게 되었다. 송림시는 북한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제철소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종..
초등학생 무렵, 부모님이 이혼했다.나는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어, 외갓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어머니의 고향은 토호쿠 지방에 있는 마을로, 꽤 쇠락한 곳이었다.집도 드문드문 있을 뿐이고, 마을에 가게라고는 작은 슈퍼 하나와 편의점 하나가 전부였다.그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지만, 전교생을 합쳐도 스무명이 안 됐다.나하고 동갑은 세명 뿐이었다.전학을 오고 1년 반 정도 지난 어느날부터, 나는 한 학년 위의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다.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어차피 시시한 거였겠지.나는 그 아이가 너무 싫어서,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문득 나는 참수지장을 떠올렸다.참수지장이라는 건 막 이사왔을 무렵 외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작은 공원 안쪽 숲에 있는 목이 없는 ..
대만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위는 바로 길가에 떨어진 빨간 색 봉투를 줍는 것이다. 봉투 안에는 여러 장의 돈이 들어있기 때문에 뜻밖의 횡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소름 끼치게 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돈 말고도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사주팔자가 적힌 종이, 그리고 사진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머리카락과 손톱의 주인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고인’이다.이렇게 길거리에 빨간 봉투를 버리는 것은 대만의 일부 지역에 남아있는 일종의 풍습이다. 미혼인 채로 숨을 거둔 가족에게 짝을 지어주기 위함이다. 길거리에 빨간 봉투를 둔 유족들은 숨어서 누가 봉투를 집는지 지켜본다.그리고 누군가 그 봉투를 줍는다면 ‘영혼 결혼식’이 이뤄졌다고 믿는다.